글

라벨이 시편인 게시물 표시

시편 114편 :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시편 114편 :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향해 떨며 찬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노예에서 자유민이 되었는지, 발 붙일 땅도 없던 노예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인이 되었는지 아름답고 장엄하게 이야기 합니다. 바다와 요단이 스스로 이스라엘 앞에서 물러나 그들의 앞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산들과 낮은 산들, 온 세상이 어린 양들이 뛰놀듯 뒤흔드셨습니다(출19:18). 그리고 그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자유민으로 만드셨고, 땅의 소유자로 만드셨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법, 사랑과 정의를 실행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종살이 하던 유다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고,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은 그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죄, 욕망과 망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바른 삶을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유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떨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선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언제나 당신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게 하소서. 언제나 감사하며 겸손하게 하시고 충성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118:1-29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시편 118:1-29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28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2024년 마지막 날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시인의 고백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인자하신지, 자신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마도 큰 위기와 환난에서 구원받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인이 고통과 절망, 낙담 중에 포기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응답하신 하나님, 그를 고통과 절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놀림거리가 되었을 때 그의 편이 되어주셨습니다(5-7).   그래서 시인은 시의 시작(1)과 끝(29)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인자하시다.”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고 인자하시다.” 이것은 시인의 고백입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이 날 새벽에 눈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기아에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시인의 찬양과 고백이 외쳐지기를 소망합니다.     ♧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 시인이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외침이 온 세상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게 하소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소서. 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111:1-10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시편 111:1-10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시편 111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정직한 자들의 감사의 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여 보여주신 일들을 보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을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신 일을 보고 경험한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깁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그의 법도/계명을 지키며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즐거운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총칼 앞에서 느끼는 강압적인 두려움이 아닙니다. 폭력 앞에서 느끼는 위협적인 두려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 기대와 소망을 채워주는 은혜와 자비의 능력에 대한 자발적인 두려운 감정입니다. 공경과 놀라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의 행하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경외함은 우리에게 주님의 법도를 따르게 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따르게 합니다. 주님의 법도와 계명은 우리를 진실하게 하고 정의의 편에 서게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도/계명을 따르고, 하나님의 법도/계명을 지키는 자는 정직하고 정의를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지키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는 지혜의 근본입니다.   ♧ 신실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따르게 하소서.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 두렵고 떨림, 기대와 소망,...

시편 109편 1-15 :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편 109편 1-15 : 나는 기도할 뿐이라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 시편 기자는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사람입니다. 가슴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울분을 토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당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잠잠하지 마시고 뭐라도 하시라고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악을 행한 자들에게 듣기에 거북하고 불편한 저주들을 쏟아놓습니다. ① 악인들이 다스리게 해달라  ② 사탄이 오른쪽에 서게 해달라 ③ 심판받을 때에 죄인으로 선고받게 해달라 ④ 기도가 죄로 변하게  ⑤ 일찍 죽게 해달라  ⑥ 직분을 빼앗기게 해달라 ⑦ 자녀는 고아가 되고 ⑧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해달라 ⑨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빌어먹게 해달라 ⑩ 고리대금업자에게 소유를 다 빼앗기고  ⑪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에게 탈취되고 ⑫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해달라 ... 시인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의 저주 목록은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런 저주의 기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마 이런 저주들을 입에 담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에 조차 이런 저주들을 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저주의 마음이 시인의 본심일까요?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4).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을 준 자들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더 악하게 굴고 있습니다. 점점 더 악하게 굴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보면서 고통 중에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쏟아놓은 저주들은 시인의 고통의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얼마 큰 고통을 받았는지를 가늠할 ...

시편 41편: 여호와 라파

시편 41편  여호와 라파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 욥기를 보면 병든 욥을 찾아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욥과 절친이라 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욥을 위로하고 회개를 촉구하다가 욥을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41편의 병든 시인도 욥과 유사합니다. 병든 시인은 욥과 달리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 대한 악담을 쏟아냅니다. 시인이 언제 죽을까? 시인의 이름이 언제 사라질까? 거짓을 말하며 널리 전합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상에서 함께 떡을 나눠먹던 친구도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시인은 자신을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몸은 병들어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고 이웃들과 친구들은 자신의 죽음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이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을까요? 위로받고 격려받아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 가운데 있는 시인입니다.  주위에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친구가 있나요? 지인이 있나요? 위로와 격려, 사랑의 전화를 한 통씩 합시다. 문자라도 합시다. 추석 명절도 가까워오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면 어떨까요? ♧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 질병으로 고통중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치유하여 주소서.새 힘이 솓아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40편: 구원받은 자의 감사

시편 40편  구원받은 자의 감사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 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우리 교회는 추석 명절이 지난 22일 주일 추수감사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면 추수한 다양한 곡식과 과일, 채소들로 강단을 가득 채워 풍성하게 꾸밉니다.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얻은 것들을 주님께 감사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농사를 짓는 성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제목을 생각하고 그것을 상징하는 물건을 상자에 담아 강단 앞에 놓기로 했습니다. 물건이 없으면 종이에 써서 상자에 넣기로 했습니다. 2024년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동행하신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언제나 함께하신 하나님, 항상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와 같이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세상 풍파 중에 함께해주신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 감사하려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기적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하면서 받은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싶어합니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난한 시인이 택한 감사의 방법은 제사나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주의 법을 삶으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감사는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름진 소를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심중에만 숨기지 않는 것이며 주의 성실과 구원을 ...

시편 39편: 건강을 회복시켜주소서

시편 39편  건강을 회복시켜주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39편의 마지막 13절은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소서”입니다. 13절을 읽기 전에는 용기없는 자의 넉두리로 읽힙니다.  “불의를 알지만 용기없어 입을 열지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그림자같은 인생이라고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넉두리를 늘어놓는구나.” 12-13절을 읽고 다시 첫 구절부터 읽으니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의 기도가 느껴집니다. 시인은 질병이 극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저주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달고 살았던 것같습니다. 그것을 후회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있습니다(1-3). 질병은 더욱 깊어지고 마음은 더욱 연약해지고 인생의 끝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아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인생이 허사요 그림자 같고 사라지는 안개처럼 느껴집니다(5-6). 질병으로 고통받는 시인에게 소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간구할 뿐입니다. “동병상련”,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자기가 그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모릅니다. 아파보지 않으면, 질병으로 절박해보지 않으면 의사의 필요성을 모릅니다.  지금 이시각 촌각을 다투며 앰뷸런스 안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어딘가로 달리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병든 자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지금 질병으로 촌각을 다투며 의사를 찾아달리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나님이 지으신 귀한 생명...

시편 38편: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편 38편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2.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 시편 38은 중병으로 고통당하는 병자의 참회의 기도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주의 화살이 아주 깊숙이 찌르고 있어서 환자는 살에 성한 곳이 없고 뼈에는 평안함이 없는 극심한 고통중에 있습니다. 상처는 썩어서 악취가 납니다. 이제 기력이 쇠하여 눈의 빛도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고 친구들도 멀리하고 친척들도 멀리 있습니다. 욥과는 달리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참회하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과 고통이 우리의 죄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모든 풍요와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과 고난을 당할 때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없는지, 하나님의 뜻에 반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있다면 참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풍요와 성공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기에 죄에 대한 징벌도 하시고 은혜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환자의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친구, 친척, 모든 사람이 멀리하고 떠나도 하나님은 속히 자신에게로 ...

시편 37편: 하나님의 동역자

시편 37편  하나님의 동역자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 얼마 전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목사님에게 요즘 마음의 분노를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분에 찬 마음 전부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불의한 부당한 부정한 불공평한 비상식적인 일들 가운데서 나는 무엇을 하는지 부끄럽다는 것, 왠지 이러다 내 인생이 끝날것 같다는 슬픈 예감…  시편 37편의 다윗은 악한 꾀를 부리며 형통한 자 때문에 내는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맡기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먹거리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신다고 합니다. 11절에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온유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는 가난한 자, 빈곤한 자, 가련한 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땅 한 자락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목자, 날품팔이 꾼 등등)에 땅의 소유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소망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정한 보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랑과 정의로 해결해 주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노아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엘리야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열외시키고 홀로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3:9).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돕는 조력자, 조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조력자요 동역자로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바라는 사랑과 정의를 위하여 아무 ...

시편 36편: 주의 인자와 정의가 이 땅에

시편 36편  주의 인자와 정의가 이 땅에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을 소리높여 찬양합니다. 시인은 주의 성소로 피신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쫓기는 두려움과 피로감, 굶주림 중에 주님의 인지하신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진실하심이 공중에 깊이 널리 퍼져있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주의 정의는 산과 같이 높고, 주의 심판은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지만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베풀고,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엎드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를 아는 것은 주의 뜻을 알고 정직하고 선하게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만을 부르며 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주님을 안다고 할수 있을까요? 주의 인자하심을 갈구하는 이들이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자녀를 잃고 애통하는 부모,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 삶의 터전을 잃고 허탈함에 빠져버린 사람들, 한순간에 몸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 현재 전쟁의 피해자들입니다. 왜 전쟁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왜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야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을 해서 무엇인가 더 가지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주님의 인자하심과 정의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와 정의가 하늘에만이 아니라 이땅에 베풀어지기를. 그들의 신음이 노랫소리로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하나님, 주님의 이름만 부르는...

시편 35편: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시편 35편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13.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4.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 같이 하였도다 15.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 시편 35편은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있습니다. 다윗은 도움을 간청하고 자신의 억울함과 적들에 대한 저주, 그리고 적들에게서 자신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는데 “참 힘들었겠다.”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목동으로 자라 야외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익숙할 법도 하지만 쫓기면서 밤이슬을 맞는다는 것, 갈 곳이 없어서,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는 중에 밤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내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처지의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감사하는 것을 보면 참 숙연해집니다. 작은 고난과 어려움, 억울함에도 죽겠다고 악을 쓰며 호소하는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13-15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합니다. 아픈 동료를 위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어머니를 위하여 곡하는 것처럼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들의 조롱이었습니다. 다윗이 고난과 위기에 처했을 때 적들과 한편이 되어 다윗을 조롱하며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구하여 달라고 건져 달라고(17). 언제쯤 적들에게서 벗어나 평안한 밤을 지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윗의 시를 대할 때마다 위로를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봅니다. ♧ 하나님, 오늘도 억울하게 고난 가운...

시편 34편: 말의 뿌리

시편 34편 말의 뿌리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 시편 34편의 표제어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가드 왕 아기스에게 잠시 몸을 의탁했을 때의 상황을 떠오르게 합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기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척하던 다윗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시편의 내용에 그런 상황과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언이나 전도서처럼 여러 교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조심해라! 악한 말, 거짓말하지 말라! 요즘 국회에서 여러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모든 것이 말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입니까? 과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과할 마음이 있습니까? 모두가 과거에 한 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말에는 사람의 마음, 사고방식, 가치관이 담겨지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을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가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전한 가치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입니다. 뿌리가 썩으면 나무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녹음을 자랑하는 나무라도 뿌리가 썩으면 결국 죽습니다. 아무리 미사어구로 청산유수로 말을 한다 해도 악한 마음, 불건전한 가치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말로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음과 사고방식, 가치관은 말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 마음을 잘 가꾸게 하소서. 선한 마음, 바른 가치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33편: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

시편 33편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 시인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고합니다. 비파와 수금으로 박자를 맞추며 새노래로 즐겁게 찬양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계획대로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을 보살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인자하심을 구하고 경외하는 자를 살피시며 그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굶주릴 때에 살려주신다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어놓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멀찍이서 그저 주마간산격으로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으신 세상을 등을 굽혀 자세히 살펴보시는 분입니다(13.14.15.18).  시인은 그렇게 세상을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런 하나님께 인자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굽어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고 굶주림에서 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 하나님, 비파와 수금으로 즐거이 노래하며 당신을 찬양합니다. 인자하심으로 굽어살피사 사망에서 굶주림에서 건지시고 살리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32편: 복있는 사람

시편 32편  복있는 사람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허물과 죄를 사함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정죄당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도 로마서 4:6에서 시편을 인용하며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워진 사람이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죄를 가려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인이 죄를 자백하지 않고 버틸 때(3.5.), 하나님의 손이 그를 내리누르고, 몸의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 같고, 홍수가 범람하여 잠기는 것 같은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죄를 숨기지 않고 자백할 때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5). 고난과 환란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무지한 말이나 노새처럼 죄에 재갈물려 끌려다니지 않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복 있는 자는 죄가 가리워져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자유롭게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고 넓게 울려퍼지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31편: 앞날은 주의 손에

시편 31편  앞날은 주의 손에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입니다. 31편을 병으로 고생하며 쫓기는 다윗의 기도라고 합니다.  병으로 인해 그는 매일을 고통과 근심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슬픔과 탄식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기력은 약해지고 뼈는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잊혀지고 있습니다. 무덤속에 있는 사람처럼, 깨진 그릇처럼 사람들의 마음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두 가지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병마, 마음도 몸도 모두 녹여버리고 사라지게 할 것 같은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에게 잊혀짐,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고대 사회에서 질병은 ‘심한 피부병’처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졌다고 합니다.  이웃들과 친척들은 그의 병의 원인을 추측하고 그를 비난하고 그의 죽음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깨진 그릇처럼 느끼며 더욱 슬픔에 젖어들었을 것입니다(12).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앞날은 주의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의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30편: 슬픔이 춤이 되게 하시는 주님

시편 30편  슬픔이 춤이 되게 하시는 주님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 의료체계 붕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를 시작으로 전공의 사직, 의대생 수업거부와 휴학, 의대교수들의 진료축소 등 의료계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치적 이슈에 묻혀서 뉴스에도 나오고 있지 않지만 전혀 해결된 것 없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만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압니다. 중병일 수록 현재 의료상황에 절박하고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의사가 필요 없는 사람은 현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편 30편은 병에서 고침받은 사람의 감사 찬양시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살려주셨음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무덤으로 들어가면 붉고 차가워진 피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썩어 흙으로 변하면 어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진리를 선포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시인은 여호와의 진리를 선포하고,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슬픔이 춤으로 변하게 됨에 감사합니다. 의사들이 없는 시대, 의사들이 없는 땅에서는 오롯이 하나님께만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있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의사들을 찾아가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 하나님, 무엇이 아픈이들을 위한 것인지 심사숙고하게 하소서. 정부나 의료계가 환자들, 국민들 편에서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소서. 그들의 고집과 불통 속에서 생명을 잃고 스올로 무덤로 떨어져 진토가 되는 이들이 더 생기지 않게 하소서. 슬픔이 춤으로 변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29편: 눈에 보이는 소리

시편 29편  눈에 보이는 소리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 29편은 여호와를 인정하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라는 요구와 여호와의 우렛소리를 통해 위엄을 나타내고, 여호와의 백성에게 힘과 평강의 복주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3-9절까지 여호와의 소리는 천둥번개 소리로 눈에 보이듯이 그려집니다. 일곱 번의 소리는 모두 눈에 보이듯이 묘사됩니다. 물위에 잔잔히 평화로이 떠 있는 소리(3), 근육이 불뚝불뚝 솟아있는 듯한 힘 있는 소리, 백향목을 꺾어 부수는 소리(4), 세상을 삼길듯 활활 타오르는 불을 가르는 소리(7), 광야를 뒤흔드는 소리(8), 암사슴을 낙(잉)태케 하는 소리(9)/ 우레같은 여호와의 소리는 소리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일들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리는 능력이 있으며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백향목을 꺽어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고, 황량하고 고요한 죽은 사막을 뒤흔들어 진동케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암사슴에게 새로운 생명을 잉태케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귀에만 들리고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롭게 하고 생명을 주는 눈에 보이는 소리입니다. ♧ 하나님, 당신의 능력의 소리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이들에게 화평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총성과 포성,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곳에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기쁨의 잔치소리가 넘쳐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28편: 힘, 방패, 피난처, 목자

시편 28편  힘, 방패, 피난처, 목자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 시편 28편은 2편부터 이어지던 적으로부터 보호, 피난처 되어 주시기를 간청하는 마지막 시편입니다. 고난, 곤경에 빠진 다윗의 심정을 잘 느낄 수 있고, 어떻게 그가 그런 일들을 인내하며 이겨냈는지 알 수 있는 시편들입니다. 28편에서 역시 다윗의 암담한, 앞이 캄캄한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께서 귀를 닫으시고 들어주지 않으시면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습니다.  매일 아침 일터로 가며 지옥으로 가는 무거운 천근만근 걸음을 디뎌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옥과 같은 곳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혹시 지금도 그런 걸음을 내딛고 계신가요? 다윗은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때에도 실망치 않고 기도했습니다. 피난처, 방패가 되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다윗은 기도만하지 않고 그의 대적들과는 달리 악하지 않은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윗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서 다시 일어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목자라고 고백의 찬양을 드립니다. ♧ 하나님, 무덤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주소서! 그들의 힘, 방패, 목자가 되어주소서! 그들의 입술에 당신을 향한 찬양이 흘러 넘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시편 27편: 강하고 담대하라

시편 27편  강하고 담대하라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 27편은 5개의 연으로 나뉩니다. 1연(1-3)은 피난처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연(4-5)은 초막, 장막에서 하나님의 보호받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3연(6)은 제사와 찬송, 4연(7-10)은 곤경에서 숨지마시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지 마시고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마지막 5연(11-14)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27편을 묵상하며, 여러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생각납니다. 특히 중병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분과 사역에 지쳐있는 동료입니다. 이들이 27편의 다윗처럼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난처로 삼아 간절히 간구 하였을지 상상이 됩니다. 다윗에게 악한 대적들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병마가 있고, 노력하고 애써도 넘어서지 못하는 사역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부모도 나를 버렸다고 표현할 정도로 가족들의 도움도 소용이 없는 어려움들, 가족들이 어떻게 도울 수도 없어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곤경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숨은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간청하는 다윗의 마음이 어떠할지 상상을 해봅니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두 분도 아마 27편의 다윗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분들 뿐만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에는 다윗과 같은 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자 지구에, 우크라이나에, 난민촌에, 아프리카의 가뭄지역에…  다윗은 곤경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와 격려, 희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14절) ♧ 하나님, 사랑하는 가족들도 어쩔수 없는 곤경의 상황, 그저 눈물을 흘리며 애태울 수 밖에 없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을 버리지 마시고 그들을 떠나지 마시고 그들의 능력,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소서! ...

시편 26편: 능력과 힘이 되시는 분

시편 26편  능력과 힘이 되시는 분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12.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 다윗은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자신을 피고인으로 대적자들을 고소인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피고인으로 고소를 당하고 있는 고난을 시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은 주의 눈앞에 있는 자이기에 행악자, 허망한 자, 간사한 자들과 함께 앉지도 동행하지도 않았음을 말하며 자신의 무죄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자신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있는 곳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죄인들처럼 영혼을, 살인자처럼 생명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억울하게 고발당했음을 호소합니다. 다윗은 억울한 고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잘 살피시고 시험하셔서 자신의 양심과 뜻을 단련해달라고 기도합니다(2). 고난을 자신을 단련하는 기회로 삼는 다윗입니다. 억울하고 화가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세상의 주관자 하나님, 공정하신 하나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그분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참고 자신을 단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고백이 우리의 힘입니다. 고난을 이기게하고, 참고 견디게하고, 불의와 싸워이기게하는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신이 평탄한 곳에 섰음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하나님, 오늘도 당신의 사랑과 정의, 공평을 믿고 순종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어떤 순간, 상황에도 당신을 올바로 고백하며 이겨내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