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의 올무를 거부한 잿더미의 신실함 (욥기 2장)
핵심 요약 : 사탄과 아내와 세 친구가 복과 재앙의 까닭을 찾으며 하나님께 인과율의 올무를 씌울 때, 잿더미의 욥은 자명한 인과율의 수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을 붙든다. 누가 욥을 고난의 한복판에 밀어 넣었는가? 욥기 저자는 그 주체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명시한다. 천상의 어전 회의에서 여호와는 사탄을 향해 "네가 나를 부추겨 까닭 없이 그를 삼키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고 선언하신다. 1장 9절에서 사탄이 욥의 경건을 비아냥거릴 때 썼던 " 까닭 없이 "(חִנָּם, 히남)라는 단어를 여호와께서 고스란히 되받아 쓰시며, 재앙의 주어를 당신 자신으로 못 박으신다.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주권을 놓으신 적이 없다. 다만 사건과 상황의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인간이 땅의 시선으로 그 주권을 마주할 때, 이유를 알 길 없는 재앙을 인과율의 수렁으로 겪어낼 뿐이다. 사탄은 "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욥 2:4)라는 속담을 앞세워 마지막 경계인 욥의 뼈와 살을 겨냥한다. 여호와께서 목숨만은 건드리지 말라는 한계를 그어 욥을 사탄의 손에 넘기시자(욥 2:6),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치솟은 악성 종기가 욥을 성문 밖 잿더미로 내몬다(욥 2:7~8). 소유와 건강이라는 외피가 벗겨진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민낯이 드러난다. 가장 가까웠던 아내는 온전함을 지키는 남편을 향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리라며 등을 돌린다(욥 2:9). 물질이 관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 때, 그 물질이 증발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인연마저 허망하게 갈라진다. 욥을 위로하러 찾아와 겉옷을 찢고 칠 일 밤낮을 함께 땅바닥에 앉은 세 친구도 본질에서는 아내와 다를 바 없다(욥 2:11~13). 그들 역시 복과 저주를 판가름하는 잣대를 현세의 소유와 인과응보에 두기 때문이다. 인과율에 매인 인간에게 '까닭 없는 고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는 온전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