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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 예수 부활 인식에서 외적-내적 3단계

누가복음 24장: 예수 부활 인식에서 외적-내적 3단계 7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고 하셨다." 8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11   그러나 사도들에게는 이 말이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렸으므로, 그들은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30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45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예수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예수는 예언자나 정치적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었다. 예수의 부활을 제자들도 믿지 못했다(11절). 여기서 예수의 부활을 거부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제자들의 시신 탈취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달할 때도 3단계를 밟는다. 첫째는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의 소식이다. 둘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통해 그들의 소식을 반복한다. 셋째는 누가 ...

누가복음 23장: 데오빌로에게 예수 죽음의 진짜 이유를 생각하도록 설계한 누가

누가복음 23장: 데오빌로에게 예수 죽음의 진짜 이유를 생각하도록 설계한 누가 2   그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22   빌라도가 세 번째 그들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단 말이오? 나는 그에게서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매질이나 해서 놓아줄까 하오." 23   그러나 그들은 마구 우기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큰 소리로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가 이겼다. 27   백성들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예수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여자들은 예수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35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자기나 구원하라지." 36   병정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37   말하였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38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이다" 이렇게 쓴 죄패가 붙어 있었다. 41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56   그리고 그들은 집에 돌아가서, 향료와 향유를 마련하였다. 여인들은 계명대로 안식일에 쉬었다. 누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외면적 세 가지 이유(2절)를 데오빌로에게 알려준다. 유대 민족 오도, 황제에게 세금 납부 반대, 그리고 자칭 그리스도로서 유대인의 왕이다. 누가는 이 이유로써 예수가 죽어야 했다고 데오빌로에게 쓰면서 부끄러웠...

누가복음 22장: 짓밟힌 예수를 믿으라

누가복음 22장: 짓밟힌 예수를 믿으라 2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없애버릴 방책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3   열둘 가운데 하나인 가룟이라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19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0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61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21장에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와 대면하는 장치를 가동시켰다. 데오빌로는 22장에서 유대 사회의 종교와 정치인들이 죽이려 들고, 그의 제자들은 주변 분위기도 파악 못하고 자기들끼리 자리 싸움이나 벌이더니 끝내 부인과 배신하는 예수를 만난다. 이런 와중에도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며 먹는 음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으려고 애쓴다. 데오빌로가 이 장면을 볼 때 예수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하고 애달플까. 누가는 짓밟힌 예수의 제자가 되라고 데오빌로를 설득한다. 데오빌로가 맨 정신에 설득 당할 수 있겠는가. 성령이 역사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누가는 이어지는 편지에서 성령을 강조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성령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사탄도 충분히 다룰 수 있겠다(3절).

누가복음 21장: 예수와 대면해야만 하는 데오빌로 - 누가의 장면 전환

누가복음 21장: 예수와 대면해야만 하는 데오빌로 - 누가의 장면 전환 4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21장에서 누가는 분위기를 바꿔 종말을 언급하며 위기감을 높인다. 지금까지는 예수와 그분 적대자들 사이의 대결이었다면, 누가는 예수와 데오빌로의 대면을 연출한다. 생뚱맞도록 짧고 간단한 과부의 헌금 장면(1-4절)은 누가가 선택한 국면 전환의 신호탄이다. 과부가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함으로써 부자들과 달랐다면, 데오빌로는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 예수에 대해 궁금한 데오빌로는 무엇을 감수해야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가의 질문 시점이 중요하다. 누가는 장면 전환을 통해 데오빌로의 결단의 시점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 두지 않고 그 이전으로 당겨버렸다. 이제 데오빌로는 내적으로 갈등하며 예수의 체포와 죽음과 부활을 대면해야 한다. 이것은 누가의 아주 괜찮은 덫임에 틀림없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로마야말로 예수가 예언한 종말의 사자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성서구절 그대로 무서워서 기절했다(26절). 그런 기절초풍 속에서도 로마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예수를 증언하는 기회로 작용했다(7-19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증언의 기회와 자기들 목숨을 맞바꿨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은 바로 그런 가치를 지닌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죽음으로써 목숨을 얻...

누가복음 20장: 웅변과 전쟁의 나라 사람 데오빌로에게 예수와 그분의 적대자들의 말씨름을 들려주는 누가

누가복음 20장: 웅변과 전쟁의 나라 사람 데오빌로에게 예수와 그분의 적대자들의 말씨름을 들려주는 누가 1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2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10   포도를 거둘 때가 되어서,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 소출 가운데서 얼마를 소작료로 받아 오게 하려고, 종 하나를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38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44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46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20장에서 누가는 예수와 적대자들의 말씨름으로써 웅변에 익숙한 로마 사람 데오빌로를 설득한다. 예수를 적대한 이들, 곧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와 장로 그룹이 예수를 얕잡아 보고 원색적으로 질문했다(1-8절). ‘우리 허락 없이 너는 무슨 권한으로 난장판을 벌이는가?’ 예수는 그들이 세례 요한에 대한 민심을 두려워 한다는 약점을 간파하고 그들의 질문의 방향을 세례 요한의 권위 출처로 바꿨다.  그럼에도, 왜 예수는 자기 권한의 출처를 알려주지 않으셨을까? 예수는 그들이 두려워서 그랬을까? 십자가를 여러 차례 예고(결단)한 예수가 그들을 피할 이유는 없다.  이어지는 포도원 주인 비유에서 예수는 자신의...

누가복음 19장: 예수의 비유와 실제 사건의 겹침-누가의 데오빌로 설득 전략

누가복음 19장: 예수의 비유와 실제 사건의 겹침-누가의 데오빌로 설득 전략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12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날 때에, 13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다가 열 므나를 주고서는 '내가 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를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걸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45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우리에게 익숙한 삭개오가 아니라 예수의 시각에서 삭개오 일화를 들려준다. 삭개오는 예수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람이다. 로마 사람인 나도 예수가 잃어버린 사람일까? 라는 데오빌로의 생각을 예상한 누가는 열 므나 비유를 동원하여 삭개오 사건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11절의 연속 구문: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도 삭개오처럼 예수가 잃어버렸다가 찾은 사람임을 확증한다.  열 므나 비유에서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받았다는 것은 누가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유대인이라 하여 더 받고, 비유대인이라 하여 덜 받지 않았다. 누가의 보편 사상은 삭개오 이야기에서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0절)는 예수의 말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열 므나 비유의 핵심은 주인의 명령인 장사다. 이득이 아니라 장사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주인의 평가 기준이다. 데오빌로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지점이다. 누가는 예수의 ...

누가복음 18장: 데오빌로의 공감각

누가복음 18장: 데오빌로의 공감각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7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34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들은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누가는 18장의 예수의 비유와 사건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데오빌로가 공감각 하기를 바란다. 데오빌로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1-8절) 중 누구에게 끌릴까? 그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삶의 정황을 고려하면,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인 일반에게 익숙한 과부보다 그에게 재판관이 더 가깝다. 누가가 과부이고, 누가의 편지는 누가의 청원이다. 8절의 예수의 한숨에서 표현되는 기도 응답을 받은 자들의 한심한 결말은 한마디로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하는 누가의 한숨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귀찮아서라도 설득당해보라고 한다.  바리새파와 세리의 기도 단락(9-14절)에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바리새인이 되지 말라고 한다. 예수에 대해 관심이 생겨 누가의 편지를 거부하지 않은 데오빌로로 결정이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좀 더 나은 그의 삶이 바리새인이 내세우는 의처럼 작용하면 안 된다. 누가는 무릎을 꿀은 적이 거의 없을 데오빌로에게 하나님...

누가복음 17장: 예수의 하찮은 용서

누가복음 17장: 예수의 하찮은 용서 5   사도들이 주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으로써 뽕나무를 바다에 심을 수 있다는 예수의 말씀에 우리네 욕망은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 투자하면 기적이 일어나거나 그런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 소위 겨자씨를 뻥튀기 해보자는 거다. 아니다. 예수는 겨자씨처럼 작은 일, 일상의 신앙을 말씀했다. 큰 돈이 오갈 때는 서류를 남긴다. 그런데, 커피 한 잔 사면서 차용증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가 말씀한 겨자씨는 신앙적 결단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선택과 결단을 가리킨다. 형제가 내게 일곱 번 죄를 지은 것을 일곱 번 용서할 만큼의 하찮은 일이다. 그런데, 누가는 진정 데오빌로에게 예수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용서의 자세를 말하고 싶은 것일까?  누가는 이 에피소드에서 데오빌로가 예수의 하찮은 용서를 알기를 바랐다. 예수의 하찮은 용서는 데오빌로에게 뽕나무가 바다에 심기우는 기적으로 다가간다.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곱 번 반복되어도 예수에게는 겨자씨 만한 하찮은 일이다. 예수의 용서는 그분의 속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용서를 비는 이에게는 하도 당연해서 하찮게 다가온다. 그분의 용서는 종이 주인의 명을 고민하고 결단한 후 따르지 않고, 종이니까 주인의 명에 반응하는 것과 같다. 그분의 용서는 요즘말로 DNA에 새겨진 용서 본성이다. 이것을 시간의 축에서 보면 만세 전 예정과 선택이고, 공간의 축에서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

누가복음 16장: 데오빌로에게 지혜롭게 싸인하라고 계약서를 들이미는 누가

누가복음 16장: 데오빌로에게 지혜롭게 싸인하라고 계약서를 들이미는 누가 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6   율법과 예언자는 요한의 때까지다. 그 뒤로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기쁜 소식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모두 거기에 억지로 밀고 들어간다. 31   아브라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16장에서 누가는 마침내 데오빌로에게 계약서를 내민다. 데오빌로는 그 계약서에 싸인을 해서 지혜로운 청지기(1-16절)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야 한다(19-31절). 그런데, 누가가 선택한 예수의 청지기 비유는 겉보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청지기는 평소 주인의 재산을 착복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가 되자 주인에게 비는 대신 주인 재산을 더 축낸다. 그는 주인에게 빚 진 사람들의 빚문서를 위조했다. 예수는 이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평가하며 비유를 마무리한다. 예수가 문제인가, 여러 비유 가운데 하필이면 이 비유를 선택한 누가가 문제인가. 누가복음의 대다수 독자는 이 비유를 읽을 때 데오빌로가 함께 읽고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데오빌로와 함께 이 비유를 읽어야 예수의 낯선 평가와 누가의 비유 선택의 이상함이 이해될 수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너의 불의한 재물로 예수를...

누가복음 15장: 누가가 내세운 세 명의 주인공들- 목자, 어느 여인, 그리고 아버지

누가복음 15장: 누가가 내세운 세 명의 주인공들- 목자, 어느 여인, 그리고 아버지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누가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음’이란 물감으로 15장을 채색했다. 누가가 선택한 15장의 주인공들은 양이나 드라크마나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이 아니라 양을 잃어버린 목자요, 푼돈을 잃어버린 어느 여인이요,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다. 목자는 양이 한 마리냐 아흔아홉 마리냐의 양적 비교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어느 여인도 마찬가지다. 큰 아들이 동생의 잘못에 의분을 터트린다면,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찾은 것에 마음을 둔다. 우리에게 익숙한 탕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아들이다. 누가는 주인공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만일 아버지가 첫째 아들을 잃어버려도 그의 기다림은 변치 않았을 것이다. 15장의 주인공들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소개하는 하나님과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데오빌로가 믿게 될 예수는 유대인이냐 로마인이냐의 경계를 모르고, 다만 자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뿐이다. 아홉 개의 드라크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 잘 움켜쥐고 챙겨야 한다고 생각되는 여인은 푼돈 한 드라크마가 소중해서 이웃까지 초청해서 함께 되찾음의 기쁨을 나눈다. 마찬가지로 목자도 백 마리의 양이 다 흩어져도 끝내 찾아내 모두 자기의 품에 안고 이웃을 초청한다. 이제 데오빌로는 누가가 세 명의 주인공들이 가리키는 그분 품에 안기기만 하면 되고, 14장부터 이어지는 잔치가 열리기만 하면 ...

누가복음14장: 누가는 데오빌로를 단맛이 아닌 쓴맛으로 요리했다

누가복음14장: 누가는 데오빌로를 단맛이 아닌 쓴맛으로 요리했다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에라도 당장 끌어내지 않겠느냐?” 23   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33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5)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35   그것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안식일 법에 저촉된다 하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이나 가축을 구하는 것처럼 예수는 데오빌로를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훌쩍 뛰어넘는다(1-6절). 마찬가지로 예수는 잔치를 열고 모든 이를 초대한다. 그러나 재물, 사업, 인간 관계 등 잔치 초대를 거절할 이유는 천 가지 만 가지이다. 그만큼 예수와 나/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7-24절). 예수가 식사 초대를 받은 자리니까 잔치라고 했으나 25절 이하를 고려한다면, 예수의 잔치 초대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로의 부르심이다(25-35절). 이것은 잔치 초대와 예수 제자됨/따름을 이어붙이는 누가의 해석이다. 누가는 예수의 초대장을 데오빌로에게 전달한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려면 재물, 사업, 인간 관계, 심지어 가족까지도 미워하라고 요구한다(25-33절). 잔치 초대를 받은 이는 초대에 응하지 못할 천 가지 만 가지 이유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누가는 그런 포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보았다(27절). 그런데, 예수를 따라나서는 것(제자됨)에서 미리 헤아려보고 계산하는 것과 소유의 포기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왜 누가는 굳이 그대로 두었는가? 미리 헤아려보면 오히려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사 아닌...

누가복음 13장: 데오빌로에게 세 차례 구사한 누가의 냉온탕 전술

누가복음 13장: 데오빌로에게 세 차례 구사한 누가의 냉온탕 전술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19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9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30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13장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병 주고 약도 주는 챕터다. 냉온탕 요법을 통해 누가는 데오빌로를 설득을 넘어 압박한다. 1-5절에서 데오빌로는 닭살이 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무리수로 보이는 빌라도의 갈릴리인 살해 사건을 유대인과 로마인의 갈등으로 몰고가서 뾰족하게 대립하도록 만들지 않고 그 사건에 대한 예수의 다른 시각의 종교적 해석으로써 그 매운맛을 순화시킨다. 빌라도, 갈릴리 사람들, 예루살렘의 사람들, 누가 자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오빌로도 포도원 지기 예수가 3, 4년 동안 열매를 기대하는 무화과나무들이다(6-9절)...

누가복음 12장: 하나님 신앙에서 이방인이라는 장애물을 치워버린 누가

누가복음 12장: 하나님 신앙에서 이방인이라는 장애물을 치워버린 누가 28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12장 전체는 바리새파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다. 바리새파는 경건을 추구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의 표면과는 달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실제 두려워한 것은 돈과 권력이다. 그들은 권력에 대해서는 겁쟁이였고(8절 이하), 돈에 있어서는 어리석은 부자다(13절 이하). 십일조는 그들의 재물 의존성에 대한 가림막이자 면죄부였으며, 그들의 청지기직은 주인에게는 아첨의 위치였으나 그들 아래 종들에게는 악질 관리자로 기능했다. 누가는 이러한 바리새파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31절).  그런데 누가의 바리새파 비판이 그의 편지를 읽는 데오빌로를 설득하기에 적합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리새파 비판을 담은 12장이 로마 사람 데오빌로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로마 사람 데오빌로와 유대인의 대표격인 바리새파 사이의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의식주에 매인 마음을 십일조로 가릴 수 없고, 아래 사람들에 대한 악행을 주인에게 굽실댐으로써 감출 수 없다. 누가는 자신이 소개하는 하나님, 곧 예수의 일대기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데오빌로에게 알려주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11장: ‘하나님-예수-제자’ 라인을 굳히기에 들어간 누가

누가복음 11장: ‘하나님-예수-제자’ 라인을 굳히기에 들어간 누가 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의 추종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 29   무리가 모여들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과 같이, 인자 곧 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1-13절은 ‘하나님-예수-제자’ 라인의 효력을 가리킨다. 이 라인을 타고 흐르는 기도는 막힘 없이 소통된다. 누가는 제자 그룹에 이방인도 포함시켰다. 이것은 예수의 유지를 받든 결과다(마 28장). 데오빌로를 설득하는 편지를 쓴 것이 그 예다. 그러나 14-26절은 ‘하나님-예수-제자’ 라인을 파손하는 하나의 시도다. 예수를 하나님이 아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라인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체결된 라인을 파손하는 행위다. 예수는 라인 파괴 시도를 어이없어 한다.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면 그 집안 망한 것 아니냐는 말씀은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19절). 성서는 명암의 대비를 매우 신속하게 한다. 창세기에도 1-2장이 밝은 부분이라면, 곧바로 3장에서 사람의 불순종이라는 어둔 면이 등장한다. 누가도 창세기를 많이 읽었는지 예수가 체결한 라인을 부수려는 시도를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들게 한다. 게다가 누가는 라인 파괴의 시도가 매우 집요하고 거셀 것이라고...

누가복음 10장: 하나님-예수-제자의 일직선 - 누가의 데오빌로 설득의 밑그림

누가복음 10장: 하나님-예수-제자의 일직선 - 누가의 데오빌로 설득의 밑그림 1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16   누구든지 너희의 말을 들으면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누구든지 너희를 배척하면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배척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10장에서도 누가는 데오빌로를 세 차례 설득한다. 첫 번째는 70/72...

누가복음 9장: 누가가 고발하는 제자들의 행태

누가복음 9장: 누가가 고발하는 제자들의 행태 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9   그러나 헤롯은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인자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46   제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3절은 예수가 제자들을 선교여행 보내면서 하신 말씀이다. 두 벌 옷도 안 되고 지팡이나 지갑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재물에 마음이 매인 우리는 두 벌 옷에 눈길을 주지만,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의존성을 당부한다.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에서 그분 의지함을 빼면 소위 속 빈 강정 아니겠는가. 제자들이 선교 여행을 하며 이런저런 병자들을 많이 고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고질병이 치유 받지 못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데(44절),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리 싸움 하느라 목에 핏대를 세웠다(46절). 그들은 예수와 함께 다녔으나 다른 꿈을 꿀 뿐이다. 제자들의 헛발질을 지켜본 누군가 나도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싶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예수의 대답은 그의 속내를 그대로 비춰준다. ‘나 가진 것 아무것도 없다’(58절). 정작 예수가 입바른 소리 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면 다 도망간다(59-61절). 12제자들과 예수를 존경한다고 하는 넓은 테두리의 제자들은 그나물에그밥이다. 그래도 제자들은 예수에게 장담한 대로 예수가 마신 잔을 운명처럼...

누가복음 8장: 데오빌로도 예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 누가가 데오빌로를 설득하는 세 이야기

누가복음 8장: 데오빌로도 예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 누가가 데오빌로를 설득하는 세 이야기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쪼아먹기도 하였다. 6   또 더러는 돌짝밭에 떨어지니, 싹이 돋아났다가 물기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8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자라나,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15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것들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서, 그것을 굳게 간직하여 견디는 가운데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들이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48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우리는 1절부터 21절까지를 씨 뿌리는 비유로 보고 한달음에 읽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는가? 씨 뿌리는 사람과 그의 행위인가, 아니면 각종 땅의 소득인가? 우리네 마음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을 증명하며 백 배의 결실에 매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7장: 그리스도교 신앙의 제 1항목으로서 모든 이를 위한 죄 용서 -누가의 데오빌로 설득 3단계

누가복음 7장: 그리스도교 신앙의 제 1항목으로서 모든 이를 위한 죄 용서 -누가의 데오빌로 설득 3단계 3   그 백부장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 사람들의 장로들을 예수께로 보내어 그에게 청하기를, 와서 자기 종을 낫게 해달라고 하였다. 4   그들이 예수께로 와서, 간곡히 탄원하기를 "그는 선생님에게서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였다. 6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께 이렇게 아뢰게 하였다. "주님, 더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내 집에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내가 주님께로 나아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 9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기시어, 돌아서서, 자기를 따라오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우리를 선생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

누가복음 6장: 복의 선언과 안식일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하고 싶은 예수의 마음

누가복음 6장: 복의 선언과 안식일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전하고 싶은 예수의 마음 1   한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2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다. 46   어찌하여 너희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느냐? 베드로를 전면에 내세우고 나서 누가는 예수의 병 고침들 가운데 안식일에 일으킨 사역을 주로 다룬다. 왜 누가는 베드로의 3단계 기적을 소개한 다음 안식일의 논쟁과 치유 사건을 배치했을까? 누가는 율법 가운데 핵심은 십계명이고, 그 가운데 중점은 1계명이 아니라 4계명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십계명의 1계명(넓게는 3계명까지)이 하나님을 향한 피조물의 올바른 태도라면, 4계명은 하나님의 뜻을 적시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과 안식하기를 원한다. 어느 신학자는 안식일을 창조 사건과 연결하여 하나님과 피조물의 창조의 일곱째 날 잔치로 해석했다. 마태도 예수의 공생애 초기에 산상복음을 배치했다 (마 5장). 마가는 안식일의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사건을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했다 (막 3장). 마가는 기득권층이 예수를 십자가로 내몬 실제 이유와 그들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십자가의 신앙적 의미를 손잡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마가는 기득권이 종교적으로 중요시하는 안식일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누가는 6장에서 안식일에 벌어진 논쟁(밀 이삭 먹은 것)과 치유 사역(손 마른 사람을 치유)을 연거푸 제시하며 마가보다 더욱 안식일을 강조한다. 그런 다음...

누가복음 5장: 성경이 말씀하는 기적-누가는 왜 예수의 공생애 시작에 베드로를 전면에 내세우는가?

누가복음 5장: 성경이 말씀하는 기적-누가는 왜 예수의 공생애 시작에 베드로를 전면에 내세우는가? 4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32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 4장에서 악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예수는 자신의 공적 활동을 시작한다.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선포하다가 사람들과 입씨름으로 진을 뺀 예수는 악령 들린 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 자신의 활동이 보다 효과적임을 알아챘다. 여기서부터 누가는 베드로를 등장시킨다. 예수는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다. 이 치유를 당시 사회 통념에 적합하게 표현하면, 열병을 몰아낸다.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누가는 5장에서 베드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누가는 왜 예수의 공생애 초기에 베드로를 내세웠을까? 그리고 예수는 로마에 대한 독립투쟁이나 민중 봉기 같은 사회-정치적 활동 대신 병자를 치유했을까? 게다가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는 매우 쉽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제안들을 거절하고 병자 치유 자체를 선택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많이 잡은 사건과 그의 반응에서 예수의 선택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예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더니 베드로는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밤새 물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친 어부 베드로에게 예수의 지시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었다. 평소 베드로였다면 물고기 한 번 잡아보지 않아 보이는 청년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기질과는 반대로 청년의 말, 심지어 깊은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