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장: 예수와 대면해야만 하는 데오빌로 - 누가의 장면 전환
누가복음 21장: 예수와 대면해야만 하는 데오빌로 - 누가의 장면 전환
4 저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자기들의 헌금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21장에서 누가는 분위기를 바꿔 종말을 언급하며 위기감을 높인다. 지금까지는 예수와 그분 적대자들 사이의 대결이었다면, 누가는 예수와 데오빌로의 대면을 연출한다. 생뚱맞도록 짧고 간단한 과부의 헌금 장면(1-4절)은 누가가 선택한 국면 전환의 신호탄이다. 과부가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함으로써 부자들과 달랐다면, 데오빌로는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 예수에 대해 궁금한 데오빌로는 무엇을 감수해야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가의 질문 시점이 중요하다. 누가는 장면 전환을 통해 데오빌로의 결단의 시점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 두지 않고 그 이전으로 당겨버렸다. 이제 데오빌로는 내적으로 갈등하며 예수의 체포와 죽음과 부활을 대면해야 한다. 이것은 누가의 아주 괜찮은 덫임에 틀림없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로마야말로 예수가 예언한 종말의 사자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성서구절 그대로 무서워서 기절했다(26절). 그런 기절초풍 속에서도 로마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예수를 증언하는 기회로 작용했다(7-19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증언의 기회와 자기들 목숨을 맞바꿨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은 바로 그런 가치를 지닌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죽음으로써 목숨을 얻으라고 제시했다(19절). 데오빌로는 예수를 의미 있는 하나의 철학 정도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데오빌로는 결단이 쉽지 않았거나 신중했던 것 같다. 그는 사도행전이 된 두 번째 편지까지 읽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