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 데오빌로에게 지혜롭게 싸인하라고 계약서를 들이미는 누가

누가복음 16장: 데오빌로에게 지혜롭게 싸인하라고 계약서를 들이미는 누가

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6   율법과 예언자는 요한의 때까지다. 그 뒤로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기쁜 소식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모두 거기에 억지로 밀고 들어간다.
31   아브라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16장에서 누가는 마침내 데오빌로에게 계약서를 내민다. 데오빌로는 그 계약서에 싸인을 해서 지혜로운 청지기(1-16절)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야 한다(19-31절). 그런데, 누가가 선택한 예수의 청지기 비유는 겉보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청지기는 평소 주인의 재산을 착복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가 되자 주인에게 비는 대신 주인 재산을 더 축낸다. 그는 주인에게 빚 진 사람들의 빚문서를 위조했다. 예수는 이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평가하며 비유를 마무리한다. 예수가 문제인가, 여러 비유 가운데 하필이면 이 비유를 선택한 누가가 문제인가.

누가복음의 대다수 독자는 이 비유를 읽을 때 데오빌로가 함께 읽고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 데오빌로와 함께 이 비유를 읽어야 예수의 낯선 평가와 누가의 비유 선택의 이상함이 이해될 수 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너의 불의한 재물로 예수를 사라는 문서를 꺼내놓으며 싸인을 하라고 다그친다. 데오빌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는 예수의 말씀을 예사롭게 듣지 못한다. 데오빌로의 전대에 불의하지 않은 돈이 얼마며, 그가 칼집에 피 묻히지 않은 칼이 있겠는가. 지금 누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피 묻은 돈과 칼로 예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13절). 게다가 이 문서는 당신에게 억지로 주어진 것이니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누가는 그를 다그친다(16절). 

이쯤에서 끝내면 누가가 아니지. 누가는 데오빌로가 싸인할 수밖에 없도록  장치 하나를 더 걸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보고 자신은 이미 지옥이지만, 이런 기막힌 꼴을 아직 모르는 그의 형제들을 위해 나사로를 보내서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사 아브라함에게 요청한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31절) 다른 괜찮은 조건의 계약서를 찾는 지혜로운(?) 데오빌로에게 누가는 이 계약서 말고는 없다고 못 박았다. 데오빌로에게 싸인이냐 아니냐만 남았을 뿐 다른 기회 창출의 계약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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