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4장: 누가는 데오빌로를 단맛이 아닌 쓴맛으로 요리했다

누가복음14장: 누가는 데오빌로를 단맛이 아닌 쓴맛으로 요리했다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에라도 당장 끌어내지 않겠느냐?”
23   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33   그러므로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4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5)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35   그것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안식일 법에 저촉된다 하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이나 가축을 구하는 것처럼 예수는 데오빌로를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을 훌쩍 뛰어넘는다(1-6절). 마찬가지로 예수는 잔치를 열고 모든 이를 초대한다. 그러나 재물, 사업, 인간 관계 등 잔치 초대를 거절할 이유는 천 가지 만 가지이다. 그만큼 예수와 나/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7-24절). 예수가 식사 초대를 받은 자리니까 잔치라고 했으나 25절 이하를 고려한다면, 예수의 잔치 초대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로의 부르심이다(25-35절). 이것은 잔치 초대와 예수 제자됨/따름을 이어붙이는 누가의 해석이다. 누가는 예수의 초대장을 데오빌로에게 전달한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려면 재물, 사업, 인간 관계, 심지어 가족까지도 미워하라고 요구한다(25-33절). 잔치 초대를 받은 이는 초대에 응하지 못할 천 가지 만 가지 이유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누가는 그런 포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보았다(27절). 그런데, 예수를 따라나서는 것(제자됨)에서 미리 헤아려보고 계산하는 것과 소유의 포기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왜 누가는 굳이 그대로 두었는가? 미리 헤아려보면 오히려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사 아닌가. 누가는 이 둘의 관계성을 망대 건축 경비 계산과 전쟁 승산을 따지는 것을 연거푸 제시하며 강조한다. 게다가 누가는 소금의 가치와 소유 포기 및 제자됨을 연결했다. 대체 누가는 미리 헤아림과 소유 포기와 소금을 무엇으로 묶고 있는가? 누가는 이러한 예수의 말들을 통해 데오빌로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망대 건축 전 견적을 내는 것과 전쟁하기 전 승산 계산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든 일에는 예산과 예상이 요구된다. 사람 일이 천 가지라면 미리 따져보는 것 역시 천 가지다. 심지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미리 계산해야 한다. 자신의 소유와 욕망과 예수 따름의 가치를 비교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는 한순간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제자가 되려는 요청들을 거절했다. 맹목적인 제자됨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밤이 새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침내 마음을 굳힌 결정으로서 제자되겠다는 결정의 가치를 예수가 모를리 없다. 예수를 따름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잔치 초대 거절 사유만큼이나 생활에 밀착해 있고 일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경건한 선배 신앙인은 ‘매사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가르침을 남겼다. 돈이 문제일 때 예수를 선택하고, 사업상의 결정이 문제일 때 예수를 판단 기준들 가운데 집어넣고, 인간 관계에서 예수를 나와 상대의 사이에 두는 것은 결국 매사에 고민하고 결정하여 예수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예수처럼 내 어깨에 얹힌 십자가 같은 것이다. 소금은 소금이지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따름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일상의 결단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사실과 그 생각의 범위는 매사라는 현실성을 숨김없이 말한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기꺼이 기름에 튀김 당해 죽고, 기꺼이 사지가 잘리다가 끝내 목이 잘려 죽고, 기꺼이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고, 원형경기장에서 기꺼이 사자밥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맹신해서 죽은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 모두는 목숨을 걸고 최종적, 최선으로 자기 포기와 예수를 선택한 이들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그래도 예수를 따르렵니까? 도망가려면 빨리 가라고 말한다. 35절의 들을 귀 가진 자는 데오빌로를 가리킬 것이다. 데오빌로는 누가의 두 번째 편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거나 아니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가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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