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 가지를 밟고 가는 나귀 (마 21:5-10)

오늘 설교자는 마태복음 21:5-10을 "봐라, 이게 평화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종려나무 가지의 역사를 BC 2세기부터 예수님 시대까지를 짧게 정리했다. 셀류쿠스가 유대를 침략했다. 자칭 에피파네스(신의 현현) 안티오쿠스 4세는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돼지고기를 먹게 했다. 종교-문화적으로 유다이즘은 헬레니즘에 철저히 짓밟혔다. 그러나 BC 168년 7월초, 마카베오 형제는 예루살렘을 탈환했는데, 그들이 성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바닥에 깔았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BC 63년경에 유대는 로마 식민지가 되고 만다. 사람들은 마카베오 같은 이, 메시아가 나타나길 바랐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나사렛 예수에 대한 소문은 마침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챙겨서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그것도 유월 절기 때 - 옛날처럼 흔들고 깔았다. 호산나, 제발 구원해주세요(호시아 + 나: 구원하소서 + 제발) 라고 외치며. 어디로부터의 구출이고 구원인가? 로마로부터의 해방이다. 

예수는 종려나무 가지에 담은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켰을까? 예수는 "나귀"를 타고 종려나무 가지 위를 밟았다. 설교자는 이쯤에서 김교신 선생의 나귀, 곧 자전거를 소개했다. 선생의 자전거는 밀고 당기고 숨을 가쁘게 만드는 힘 센 전차에 맞선다. 예수는 힘과 폭력과 경쟁과 억압으로부터 구출이라는 기대를 한껏 담은 종려나무 가지 위를 나귀를 타고 지나갔다. 

그렇다, 예수는 칼과 병거와 군마를 십자가로 막았다. 예수가 제시한 나귀와 십자가로서의 평화는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들며 주저하도록 한다.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에 목을 걸어야 하는데 고민과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