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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장: 사망에 이르는 죄

요한1서 5장  사망에 이르는 죄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요한은 죄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이기에 요한은 이렇게 강한 어조로 거부하는 것일까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생각하니, 마태복음 12:31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용서받지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된 자를 치유해주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방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예수께서는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여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일을 훼방하는 것은 사함을 얻지 못하니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1)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능력으로 비방하는 것 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민 15:30, 히 6:4-6, 10:26-32, 요일 5:16) 3) 성령의 감화 하고 회개시키는 능력을 계속적으로, 고집스럽게, 끝까지 거부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가 사망에 이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그분의 뜻)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한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에 빠져서 정의와 자비와 믿음(마23:23)을 버리고 있지 않은가요? 예수께...

요한1서 5장: 예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요한1서 5장  예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예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서 서로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며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깎아내며 맞추어가는 과정에 때때로 아픔이 있고 위기가 있고 기쁨과 행복이 있기도 합니다.  아픔과 위기, 고통이 있어도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함께 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단할 것입니다. 아픔보다 사랑이 더 크기에 견디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하나님과 함께 살아감에 기쁨과 행복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픔과 갈등, 위기가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중에 생기는 생로병사의 아픔도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아픔들이 있습니다. 그 아픔들, 두려움들을 참고 견디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분을 믿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분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분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아픔과 고통과 두려움을 참고 견딜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법,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며 보여주신 사랑을 우리가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계명이 무겁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무겁습니다. 그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위기를 맞고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예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요한일1서 4장: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1서 4장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종종 성경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문화적 차이, 가치관의 변화 등등 오늘날과 성경의 배경 시대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어려우니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참 어려운 분으로 생각됩니다.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분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힘든 것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종종 성경은 참 쉽다고 말하곤 합니다. 성경의 곳곳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뜻은 어렵게 쓰여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제사보다 순종을 원한다! 부모를 공경하라!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도우라! 이웃을 사랑하라!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쓰여 있습니다. 어려운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도 아닙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많은 이유 때문에 행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들을 버리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어려운 것은 성경이 아니라 아는 것을 행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니 서로 사...

요한1서 3장 (#2):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니다

요한1서 3장 (#2)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니다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요한은 예수님의 새계명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돈이 있으면서도 궁핍한 사람을 보고 지갑을 열지 않으면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17).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니라 행동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랑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말과 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 말과 혀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요한1서 3장: 하나님의 자녀

요한1서 3장  하나님의 자녀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저는 요즘 7살 아들의 변화하는 모습에 참 행복합니다. 아들은 100살까지 요즘처럼 “똥”이야기하며 살 거라고 합니다. 이유가 뭔지 상상이 가시나요? 자기가 아이로 100살까지 살면 아빠도 100살까지 살 거라고 합니다. 이런 아들과 함께 있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랑스런 아들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놓으라고 한다면 내놓을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가?(1절) 독생자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대가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그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큰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죄악의 길로 들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7절)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입니다.(8절) 하나님께 속한 자는 의를 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청산유수로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쳐도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10절).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

요한 1서 2장 (#3): 누가 적그리스도인가?

요한 1서 2장 (#3)   누가 적그리스도인가?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 고등학교 때인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 자극적인 문구와 그림이 들어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휴거, 666, 적그리스도, 다니엘서 강해” 궁금함과 두려움을 갖고서 참석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 마음을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기독교백화점에는 그런 류의 책들이 한동안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양을 한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름답고 친절하고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겉모양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겉모양은 화려하고 멋지지만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일을 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길을 가로 막았던 순간의 베드로도 적그리스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면 바로 나도 적그리스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29절) ♧ 하나님, 당신의 의를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일을 가로막는 자가 되지 않게 이끌어 주소서. 성령님, 진리로 인도하소서. 아멘.

요한1서 2장(#2): 사라질 것들

요한1서 2장(#2)   사라질 것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요한은 세상과 하나님을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것을 택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택하는 자는 세상 것들을 멀리합니다.  세상의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멀리해야 할 것,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것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으로서 멀리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생명이 붙어서 살아가는 동안 끊어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정욕과 자랑이라는 말은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욕구를 절제하고 통제하지 못하여 부정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상태를 정욕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욕구 자체는 부정한 것도, 나쁘고 악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선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식욕이 없으면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욕이 없으면 이 세상이 유지될까요? 눈에 보이는 것들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인간 세상의 전반적인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요? 또 자신에 대한 자부심/자존감이 없다면 어떨까요?      욕구가 문제가 아니라 욕구를 절제하고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식욕이 없을 수 없습니다. 간혹 식욕이 없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만 극단적으로 식욕이 없으면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반대로 식욕이 지나치면...

요한1서 2장: 대언자 예수

요한1서 2장 대언자 예수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나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나요? 아무리 해명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해가 점점 더 커져갈 때 그 마음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억울한 오해를 받을 바로 그 때, 누군가 대신하여 이야기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도 그가 사회적으로 혹은 공동체에서 신망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의 대언자가 되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아니고 오해를 받는 것도 아닌 분명한 나의 잘못, 나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나를 위하여 말씀해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변호자가 되어 주신답니다. 이보다 더 든든한 변호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왜 예수님은 나를 대언/변호해 주실까요? 그저 불쌍하고 가여워서 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위해 대언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언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대언/변호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3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5절) 예수님은 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 곧 자신의 사람들을 대언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 예수의 흔적을 남기고 사는 사람들, 예수의 냄새를 풍기고 사는 사람들, 예수의 온전한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런 이들을 위해서 대언자가 되어주십니다.  계명대로 살고, 흔적을 남기고, 냄새를 풍긴다 하여도, 우리는 온전히...

요한1서 1장 (#2): 하나님과의 사귐

요한1서 1장 (#2)  하나님과의 사귐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사귐이 있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 얼굴을 보이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무엇인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사귐은 함께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은 그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그분의 마음과 내 마음을 주고받으며 인간인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가지고 그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며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만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상호적인 사귐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은 진리이며 선한 것, 옳은 것, 정의를 의미합니다. 그와 반대로 악한 것은 어둠입니다. 그래서 빛은 어둠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은 자석의 N극과 S극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습니다. 어둠이 빛인 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둠에 현혹되어서 살아갑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 거기에 있는 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둠을 가까이 하지 말고 빛 가운데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어둠을 멀리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한 것, 옳은 것, 정의로운 것을 말하고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복음의 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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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1장 복음의 가교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객관적으로 누구나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 1서를 시작하면서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마도 그 사람들은 “뭔 소리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어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를 전하는 것에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거창한 고백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내가 경험한 예수, 내가 듣고, 배운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왜 예수를 믿는지... 나의 예수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사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제/사귐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예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제/사귐에는 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말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삶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교제/사귐은 예수께로 가는 다리와 같습니다. 우리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좋은 교제/사귐을 한다면 그들 또한 예수와 사귐을 갖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로 가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예수를 전하게 하소서. 예수를 전하는 두려움을 제거하여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