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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이대로 (고후 12:1-10)

고후 12:1-10 내 모습 이대로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1)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세상에는 힘 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연약한 자도 있고 지식이 많은 자가 있는가 하면 학식이 부족한 사람도 있으며, 돈을 많이 가진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진 재물을, 학벌이 좋은 사람은 학벌을, 권세를 지닌 사람은...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약 2:1-13)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난하고 약한 자였던 나를 긍휼히 여기셨고, 실제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실행하셨음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약 2:1-13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본문의 외형은 이웃 사랑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야고보서가 행함을 강조하려다 보니 믿음을 간과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가 겉보기에는 행함을 강조합니다만, 야고보서의 행함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

영광을 품은 고난 상속 (고후 4:16-18)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님처럼 고난을 상속받는다. 다만 그 상속받은 고난은 그 속에 영광을 품고 있는 고난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부활도 상속받았다. 고후 4:16-18 영광을 품은 고난 상속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낙심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은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우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가벼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난과 고통을 가볍다고 느끼지 못하는 데 말입니다. 게다가 바울이 고생이나 고난을 모르는 사람이 아닐텐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가볍다고 하니 의아합니다. 바울의 말을 계속 들어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고난이 장차 영원한 영광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고난과 고통을 가벼운 것이라고 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현재의 고난의 짐을 가볍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일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거론하며 맹목적으로 신앙하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아픔과 고통을 간단히 합리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신앙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단순하고 간단하게 내세우며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진통 주사를 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낙심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 무게도 가볍고, 현재의 고난이 나중에는 영원한 영광이 된다고 자신있게 말하...

하나님 신뢰, 자전거 타기 (행 16:16-34)

하나님의 실수로 보이는 것이 인간의 완벽함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만을 신뢰할 뿐입니다. 우리가 신앙이라는 자전거를 타려면 매번 그 타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행 16:16-34 하나님 신뢰, 자전거 타기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 (눅 23:26-31)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불의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불의한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자녀까지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녀의 손을 이끌고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는 없습니다. 눅 23:26-31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어 밤새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심문 당하고, 희롱과 매질을 당하다 마침내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벌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밤새 심문을 받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십자가를 지셨기에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자꾸만 쓰러졌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위해 동행하던 집행관이 거기에 모인 구경꾼 중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 시몬입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에게 맡긴 예수님의 눈에 그제서야 자기를 따라오며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성들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하신 내용이 본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이 세워놓은 세 개의 허들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각각의 허들을 차례로 넘는 동안 본문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허들 첫 번째 허들은 28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영생 질문 (눅 10:25-37)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단순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눅 10:25-37 영생 질문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한 편의 연극인 본문 본문은 전체가 2막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연극 같은 이야기입니다. 1막은 율법학자가 영생을 질문하는 25-28절까지 입니다. 2막은 율법학자가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질문하는 29-37절까지 입니다. 이 연극의 주제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입니다. 연극의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율법학자는 예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너...

기적과 하나님 나라 (눅 9:10-17)

그리스도인은 물고기 두 마리나 떡 다섯 개, 또는 음식을 먹은 5,000명이라는 숫자보다 예수님 앞에 나온 마음과 몸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음식이 주어졌다는 것을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기적과 하나님 나라 눅 9:10-17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몇 가지 해석 본문은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사입니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일 수 있느냐며 고개를 저으며 신문의 가십란에도 실릴 수 없는 거짓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난처한 반응을 만나면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무조건 믿든지, 아니면 슬쩍  피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성경의 기사를 해석합니다. 어떤 이는 본문의 평행본문인 요한복음 6장을 근거로 어린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선뜻 내놓자, 감동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 도시락을 꺼내 놓음으로 5,000명이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해석을 ...

약속의 말씀 (눅 6:36-42)

약속의 말씀 (눅 6:36-42)  그리스도인에게 산상보훈은 산상복음으로 들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받은 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예수께 용서에 대한 감사기도와 사랑을 베풀어달라는 청원기도를 드려야 한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그리스도인에게 산상보훈은 금언집인가? 산상수훈은 ‘제자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셔서 가르침을 주신 말씀인데, 그 내용이 어떻게 하면 제자로서 살 수 있는지를 담고 있어서 제자도라고 부릅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에도 나오는데, 거기서 예수님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돌려대주라고 합니다. 5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10리라도 동행해주라고 합니다.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속옷까지도 벗어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 비판하지 말며, 정죄 대신에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까지 산상수훈을 읽은 그리스도인은 자책하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씨 뿌리는 농부 (막 4:1-9)

우리가 옥토여야만 말씀의 씨앗을 싹 틔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단 한 톨의 씨앗도 우리 가슴에 심기우지 못했을 겁니다. 막 4:1-9 씨 뿌리는 농부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어떤 씨들은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이 길 가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들이 날아와서 냉큼 쪼아 먹었습니다. 이 씨앗은 뿌리를 내릴 시간조차 없습니다.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면 얼른 날아와서 집어 먹지 않습니까? 딱 그 모양입니다. 농부가 뿌린 씨앗 중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으니 겨우 움은 틔웠는데, 해가 쨍쨍 내리쬐니까 뿌리가 말라버렸습니다.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덤불도 씨앗이 자라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났다고는 하나 가시 기운에 막혀 잘 자라지도 못하고, 결실도 좋지 못합니다. 마지막 땅입니다. 농부가 뿌린 씨앗 중 어떤 씨앗은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흙이 보들보들하여서 씨앗의 뿌리가 잘 내렸습니다. 양분도 충분하여 씨앗이 큰 결실을 맺었습니다. 성경은 그 결실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9절까지만 읽었는데, 10절부터는 예수님이 이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제자...

제자편입니까? 세리편입니까? (마 21:28-32)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제사장과 장로들입니까? 아니면 가슴만 쳐야 하는 회개가 필요한 세리에 속하십니까? 마 21:28-32 제자편입니까? 세리편입니까?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성전에 돈 바꿔주는 가게, 비둘기 등을 파는 제물 가게 등이 있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예수님은 상점의 진열대를 엎으시고, 돈통을 발로 차시며 상인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다음날 예수님이 다시 성전에 가니까 성전 관계자들인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난리를 피우냐고 따졌습니다. 따지며 달려드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세례 요한에게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는가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과 가까이 계십니까? 아니면 멀리 계십니까?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성전과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사장이과 장로들은 성전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일반인보다 더욱 경건하게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좋아하고 기뻐하시며 자기들에게 복을 주셔서 인사를 받으며 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시골 출신인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하니까 당장 달려와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의 행색을...

왜 예수님은 우리를 낭떠러지로 내모실까? (마 5:38-48)

마 5:38-48 왜 예수님은 우리를 낭떠러지로 내모실까? 그리스도인은 낭떠러지에서 예수께 자기 몸을 던져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이고 죄성이며 악한 본성입니다. 하지만 그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십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옛적에 하나님은 계약을 깨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가슴 속에 새 계명을 새겨놓겠다고 하셨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으로 그를 온전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허물을 걷어내 주시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낭떠러지에 선 그리스도인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38-47절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눈은 눈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은 세상의 이치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전한 예배 (미 6:6-8)

미 6:6-8 온전한 예배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우리 가슴을 찌를 때, 우리가 경거망동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문제와 사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해야 할지를 잘 판단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어떤 식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격이나 인성, 능력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미가서 6장의 본문을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합니다. 미가서로 곧바로 들어가기 전에 욥기와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구도를 먼저 살펴보고 본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욥기와 창세기의 첫 부분의 구도는 서로 비슷합니다.   먼저 욥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넘깁니다. 그러자 사탄은 욥 자신과 다른 이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표식인 재산을 무너뜨립니다. 심지어 욥은 자녀뿐 아니라 아내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맙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아슬아슬한 처지로 떨어졌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일보직전입니다. 사탄이 목표한 것은 욥의 하나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초입부에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범하자, 물질(자연)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아담과 하...

에스겔의 힘 (겔 1:1-3)

에스겔 1:1-3 에스겔의 힘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잊지 맙시다. 삶이 온통 뒤죽박죽이고 매일 매 순간 시험과 유혹을 받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은 잊지 맙시다. — 에스겔의 힘의 실마리 에스겔은 바벨론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니까 그는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전 1차 포로 때 바벨론으로 잡혀온 것입니다. 본문 1-2절은 그가 포로로 끌려온 지 5년 5일이 지났고, 30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스겔은 25살 때 바벨론에 잡혀와 벌써 5년이 지나고 있었던 겁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그날부터 날수를 세면서 특별한 사건들을 메모했습니다. 그 기록이 바로 에스겔서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는 에스겔이 적은 신앙의 일기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포로의 신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나이가 서른 즈음이 되니 젊은 날 예루살렘에서 품었던 꿈이 속절없는 시간 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발 강의 운하공사에 투입되었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하루하루를 그저 포로에게 주어진 강제노역으로만 채웠다면, 오늘날 에스겔서는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에스겔에게는 내적 힘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3절에서 에스겔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올 때 에스겔의 나이가 25세였으니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일을 시작할 나이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면 제사장의 직무를 배웠을 5년 동안 제사장 직무교육이 아니라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에게 제사장이 무슨 ...

예레미야의 슬픔과 선택 (렘 1:4-10)

렘 1:4-10 예레미야의 슬픔과 선택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삶을 알아버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압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눈물 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한 번도 칭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환호보다 욕설을 들어야 했고 매를 맞았습니다. 그는 구덩이에 던짐을 당하고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동족에게 체포되어 애굽으로 끌려 갔으며, 그 이후 그의 삶의 여정은 분명치 않습니다. 그의 인생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그래서인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슬프다”고 호소합니다.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네 차례나 “슬프도소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예레미야의 슬픔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장 6절의 ‘슬프도소이다’입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가 겸손해서 자신은 물불 가릴 줄 모르는 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아직 선지자로서 공적 활동을 시작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입니다. ...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욘 3:10-4:11)

욘 3:10-4:11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제일 밑바닥에 있고, 지옥 자리라면 제가 있을 곳은 거기 아랫목입니다. 거기에서 뻗어주신 주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람의 욕망과 하나님의 복 (창 12:1-3)

사람의 욕망과 하나님의 복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을 기대합시다.  비록 우리의 신앙이 사인파 곡선(sine wave)을 그리고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납시다.  비록 사람의 욕망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다립시다.  아브라함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 창세기의 전반부에는 드라마 같은 굴곡이 있습니다. 높아진다 싶으면 추락하고, 그 추락하는 속도도 빠르며, 그 깊이도 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 피조물들을 바라보시며 흐뭇해 하셨습니다(창 2장). 하지만 하나님의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람의 타락이 나옵니다(창 3장). 곧바로 가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 살인사건이 이어집니다(창 4장).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시며 위로하심에서 따스함과 평안이 이어지는가 싶다가도(창 4-5장) 곧이어 노아 홍수 이야기가 나옵니다(창 6장).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한 편으로는 내 영이 더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노아 가족을 살리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안도하다가도,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는 장면에서 다시 긴장하게 됩니다(창 11장). 이렇게 창세기 전반부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신 일과 사람이 하나님께 행한 일이 번갈아 대조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새 아들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살려주시는데, 사람은 하나님께 올바른 모습을...

가인과 그 후예들 (창 4:1-15)

가인과 그 후예들 창 4:1-15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 우리의 손바닥에도 가인이 쥘 수 있었던 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인의 후예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십자가에 묶인 그리스도인의 운명 (고전 1:18-25)

십자가에 묶인 그리스도인의 운명 고전 1:18-25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는 예수님의 가시였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주지 않았다.  예수님도 바울의 가시를 빼내주지 않았다.  누구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자기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그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운명처럼 십자가에 묶인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낸 이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 바울은 이 말을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했습니다. 바울이 십자가를 언급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교우들이 파당을 지어 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파당을 지어 서로 대척하고 싸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제시한 해결책이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십자가를 중심으로 마음을 다시 모으자고 했던 것입니다. 너는 무슨 파, 나는 무슨 파니 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롬 9:6-13)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롬 9:6-13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예언자의 마지막 말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과 희망의 선포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는 구절에서 희망을 본다. 거기서 그는 이스마엘이 이삭이 되고 에서가 야곱이 되는 생명의 법의 최종 승리를 외친다.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했다. 두 법의 싸움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7장까지 자신을 휘감고 있는 죄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죄의 법은 바울에게 사형판결을 내립니다. 마침내 바울은 비명을 지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구나(롬 7:24) 로마서 8장에서는 죄의 법에 따라 사형판결을 받은 바울에게 다른 법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법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자신을 해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8장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