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본문을 가룟 유다와 마리아를 대조하며 해석했는데, 그것은 편집자 요한의 시각이다. 본문의 장소는 아직 죽음의 냄새가 가시지 않은 나사로의 집이다. 거기에 최고의 향수 냄새가 퍼진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가룟 유다의 가난한 자를 위한 돈 사용에 맞서는 마리아의 애정의 과소비가 맞선다. 남성 가룟유다의 이중성(요한은 혹시라도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각주 대신 아예 본문에 박제했다, 6절)과 여성 마리아의 진정성 넘치는 감성이 맞선다.
마침내 예수가 이 둘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7-8절) 마리아는 정말 예수의 죽음을 알아챘을까?
설교자는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애정을 대답으로 던졌다. 마리아는 다가올 예수의 죽음을 직감/감성적으로 알아챘고, 예수는 마리아가 사랑의 촉으로 알아차린 통찰에 고마워 했다. 가룟 유다 닮은 이들은 마리아의 현자의 촉이 없다. 요한 편집자와 한참 시대가 흐른 뒤에 요한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설교자는 마리아의 사랑의 눈에 공감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