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식에 함께 탄식하는 멋진 동맹 (눅 13:31-35)

오늘 설교자는 누가복음 13:31-35을 "뜻 밖의 협력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본문은 누가복음 만의 특수 사료이다. 본문의 장면이 누가복음에만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 너머에 있는 누가만의 특수한 시각이 무엇일까? 대개 바리새인은 예수와 적대적인 관계인데, 본문의 바리새인은 예수의 협력자로 등장한다. 헤롯의 살해 계략을 알려주며 어서 피하라고 예수를 돕는다. 누가복음 13:1에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에 예수와 바리새인은 함께 화를 낸다. 바리새인이 예수의 동맹 그룹이 된 것은 누가 편집자의 특수 시각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의 종교적-정치적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예수와 바리새인은 함께 탄식한다. 
설교자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열거했다. 얼토당토 않은 식민지 복음화론, 교주화, 성차별, 미신, 돈에 미친 현상 등, 이 모든 것은 한국 개신교 몰락의 현상이다. 서기 30년경의 예수의 탄식은 50년 정도 이후의 누가 편집자에게서도 그치지 못했고, 이후 200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예수의 장탄식이다. 예수의 탄식에 동맹 그룹을 형성하자.

하나님의 아들의 아방가르드적 삶 (눅 4:1-13)

오늘 설교자는 누가복음 4:1-13을 "광야의 시험, 끝내 인간이었기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본문은 예수의 광야 시험 사건인데, 주요 등장인물은 시험 사건 직전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예수와 사탄이다. 설교자는 누가 편집자의 하나님 아들 개념을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 아담'으로 마무리되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참고. 마태복음의 족보는 위로부터)을 통해 인간성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숨결로 충만한 아담(창세기)처럼 그분의 숨결로 충만한 예수는 같은 선상에 있다. 
사탄의 주특기는 시험이다. 누가가 정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받는 사탄의 시험은 세 가지로서 빵, 권력, 그리고 사탄 경배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삶에서 빵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다른 무엇이 있다고 시험 답안을 적어냈다. 권력, 특히 하나님 아들의 증거가 되는 기적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신분, 곧 십자가를 피할 권세를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사탄의 최고 난이도의 시험은 경배이다. 이 시험은 떡과 권력을 아우르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답안을 썼다. 
누가 편집자의 시각의 특징인 인간성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여기에 아담도 예수도 그리고 나는 동일한 선 위에 선다.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누가가 고민한 사탄의 세 가지 시험도 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설교자는 인간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의 아방가르드(전위대)로 살자고 촉구했다. 

성사론 논쟁(The Sacramental Controversies: A Historical and Theological Overview)

성사론 논쟁에 대하여(The Sacramental Controversies: A Historical and Theological Overview)




1. 성사론 논쟁: 은혜의 통로인가, 분열의 불씨인가?

교회 역사는 성사(Sacramentum)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성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거룩한 표징이자 도구라는 점에서는 큰 이견이 없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와 효력, 그리고 실행 방식에 대해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다양한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때로는 이러한 견해차가 단순한 신학적 논쟁을 넘어, 교회 분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성사론 논쟁은 이토록 중요하며, 그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일까?


성사, 무엇이 문제인가?: 핵심 쟁점들

성사론 논쟁의 중심에는 성사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뜨겁게 달궈진 쇠처럼, 이 질문들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성사의 정의: 성사는 과연 무엇인가? 단순한 상징적인 의식에 불과한가, 아니면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특별한 도구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 은혜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어떻게 현재 우리에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연결된다.


성사의 개수: 진정한 성사는 몇 가지인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고수해 온 일곱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는 모두 성서적, 신학적 정당성을 갖는가? 아니면 개신교의 주장처럼 세례와 성찬(성만찬)만이 진정한 성사인가? 이 질문은 성서의 권위와 교회 전통의 관계, 그리고 성사가 인간 삶의 어떤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다.


성사의 효력: 성사는 어떤 방식으로 효력을 발휘하는가? 성사 자체가 자동적으로 은혜를 베푸는가(ex opere operato, 행위 자체로), 아니면 성사를 받는 사람의 믿음과 자세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지는가(ex opere operantis, 행위자의 믿음으로)? 이 질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은혜와 믿음의 관계에 대한 더 넓은 신학적 논쟁과 직결된다.


성사의 집례자: 누가 성사를 집례할 권한을 갖는가? 오직 안수를 받은 성직자만이 성사를 집례할 수 있는가, 아니면 평신도도 특정한 상황에서 성사를 집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교회의 구조와 권위,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교회론에 관한 근본적인 이해를 반영한다.


성사의 수혜자: 누가 성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믿음을 고백하고 회개한 성인만이 성사를 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유아도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구원의 본질, 언약 공동체의 성격,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에 적용되는지에 대한 이해와 연결된다.


이러한 질문들은 추상적인 교리 논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 질문에 대한 답은 실제 신앙생활과 예배, 교회 제도와 직분, 더 나아가 구원관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성사론 논쟁의 권력 역학

성사론 논쟁은 순수한 신학적 관심사만이 아니라, 종종 교회 내 권력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중세 시대 성사의 집례권을 성직자에게만 제한한 것은 평신도에 대한 성직자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는 교회가 신자들의 삶과 구원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주요 도구였다. 성사를 통제하는 자가 구원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인식은 교회의 제도적 권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종교개혁가들이 성사의 수를 줄이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화하며,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은 단순한 신학적 개혁이 아니라, 교회 내 권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봉건제도의 쇠퇴, 인쇄술의 발명, 민족국가의 부상 등)와 맞물려 있었다. 성사론의 변화는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변혁의 일부였으며, 이는 성사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현대에도 성사론 논쟁은 종종 교회 내 권력 구조와 연결된다. 여성 성직자 서품 문제, 동성애자에 대한 성사 제공 여부, 이혼과 재혼한 사람들의 성찬 참여 등의 문제는 신학적 질문인 동시에 교회 내 권력과 포용의 경계를 정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쟁은 "누가 성사에 접근할 권리가 있는가"와 "누가 그 접근을 통제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권력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논쟁의 역사: 분열과 갈등, 그리고 성찰

성사론 논쟁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역사와 함께 호흡해 온, 길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교회: 도나투스파 논쟁은 성사의 유효성이 집례자의 도덕성에 달려있는가, 아니면 성사 자체의 거룩함에 달려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주교 도나투스를 따르는 도나투스파는 배교자 성직자가 집례한 성사는 무효라고 주장한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정통 교회는 성사의 객관성을 옹호하며 ex opere operato 개념을 발전시켰다.


중세 시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은 중세 신학을 뜨겁게 달구었다.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 공재설(consubstantiation), 상징설(symbolism)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고, 이는 때로 정치적 갈등과 맞물려 격화되기도 했다.


종교개혁 시대: 16세기 종교개혁은 성사론 논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등 종교개혁가들은 각기 다른 성사 이해를 제시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다. 성사의 수,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 방식, 유아세례의 정당성 등 여러 쟁점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는 서방 교회의 분열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 20세기 이후 현대 신학은 성사의 의미와 효력, 교회론과의 관계, 사회적/윤리적/생태적 차원 등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며 성사론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에큐메니컬 운동은 분열된 교회들 사이의 성사 이해의 일치를 모색하며, 성찬의 상호 인정, 공동 예배 등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성찬의 가능성과 그 신학적 의미를 둘러싼 논쟁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성찰적 질문들

성사론 논쟁은 왜 이토록 첨예하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가? 단순히 교리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혹시 그 이면에는 권력, 정치, 문화 등 다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성사론 논쟁은 기독교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분열과 갈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을까? 아니면, 성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신앙의 역동성을 촉진하며, 교회를 쇄신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성사론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과거의 논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의 에큐메니컬 대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분열과 갈등을 넘어, 성사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길은 무엇일까?


2. 고대 교회의 논쟁: 도나투스파 논쟁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사론

고대 교회에서 성사론 논쟁은 주로 두 가지 큰 흐름을 통해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도나투스파 논쟁(Donatist Controversy)을 통해 불거진 성사의 유효성과 집례자의 자격 문제였고, 두 번째는 이러한 논쟁에 대한 신학적 응답으로 제시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사론이었다.


2.1. 도나투스파 논쟁: 성사의 객관성 vs. 집례자의 거룩성

4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도나투스파 논쟁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303-305년)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박해 시기에 일부 성직자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성경을 불태우거나 이교 신전에 제물을 바치는 등 배교 행위를 저질렀다. 박해가 끝난 후, 이들 배교 성직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와 성사를 집례하자, 이들의 성사 집례가 유효한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도나투스파는 배교 성직자들은 이미 거룩함을 상실했으므로, 그들이 집례하는 성사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오직 거룩하고 흠 없는 성직자만이 유효한 성사를 집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주장은 성사의 유효성이 집례자의 개인적인 거룩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나투스파는 자신들만이 참된 교회이며, 배교자들과 타협한 다른 교회는 이미 순수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분리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성사의 유효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교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자들의 순수한 공동체인가(도나투스파), 아니면 죄인과 의인이 함께 섞여 있는 보편적 공동체인가(아우구스티누스)? 이 질문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완전성과 은혜의 주권적 성격에 관한 더 깊은 신학적 문제와 연결된다. 도나투스파의 주장은 결국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이 하나님의 은혜 작용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은혜의 주권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2.2.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사론: 은혜의 불가시적 표징, ex opere operato

도나투스파 논쟁에 맞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사의 객관성을 옹호하는 강력한 신학적 논변을 제시했다. 그는 성사를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표징"(visible form of invisible grace)으로 정의하고, 성사의 유효성은 집례자의 개인적인 거룩성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 자체의 능력, 즉 ex opere operato("행해진 일 자체로부터")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ex opere operato는 성사의 효과가 집례자나 수혜자의 주관적 상태(믿음, 회개, 도덕성 등)에 의존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 예식의 올바른 집행을 통해 객관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례를 예로 들어, 세례의 은혜는 물을 붓는 행위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말씀이 결합될 때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개인적인 거룩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ex opere operato를 주장한 것은 단순히 교회의 일치를 위한 실용적 방편이 아니라,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거룩함이 아닌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에 기초한다는 신학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그의 은혜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의 신학적 입장은 성사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사론은 성사의 객관성을 확립함으로써, 교회의 분열을 막고 성사의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ex opere operato 개념은 이후 서방 교회의 성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로 자리 잡았다.


성찰적 질문들

도나투스파 논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분열과 배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


아우구스티누스의 ex opere operato 개념은 성사의 객관성을 강조하지만, 성사 수혜자의 믿음과 회개를 경시하는 것으로 오해될 여지는 없을까?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오늘날 성직자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사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성직자의 개인적인 흠결에도 불구하고 성사의 유효성이 보장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3. 중세 시대의 논쟁: 성만찬과 성사의 수

중세 시대에는 성사론 논쟁이 주로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현존 방식에 대한 논쟁이었고, 두 번째는 성사의 수에 대한 논쟁이었다.


3.1. 성만찬 논쟁: 실체변화, 공재설, 상징설

성만찬은 중세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논쟁적인 성사였다.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화되는가, 아니면 단순히 상징하는가 하는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공식 교리로 채택된 실체변화설은 빵과 포도주의 겉모습(accidentia)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본질(substantia)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실체와 우유(偶有)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표적인 성만찬 이해 방식이었다.


이 교리는 단순한 형이상학적 설명을 넘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원 사역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실체변화설에 따르면, 성만찬에서 그리스도는 단지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온전히 현존하시며,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의 신비가 지속되는 것이다. 또한 이 교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미사에서 비피의적(non-bloody)으로 재현된다는 가톨릭 교회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재설(consubstantiation): 실체변화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공재설은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함께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빵과 포도주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공재설은 실체변화설의 형이상학적 어려움을 피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옹호하려는 시도였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는 기독론적 이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재설은 성만찬에서 물질적 요소(빵과 포도주)의 실재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긍정함으로써 창조 세계의 선함과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상징설(symbolism):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단순히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상징설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부정한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를 나누는 상징적인 식사라는 것이다. 상징설은 성만찬의 신비적 요소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징설 지지자들은 이 견해가 성만찬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의 믿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영적 교제를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상징'은 단순한 표시나 기호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실재에 신자를 실제로 연결시키는 강력한 매개체이다.


이러한 성만찬 논쟁은 단순한 교리적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현존 방식, 물질과 영의 관계,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균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본질에 관한 깊은 신학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3.2. 성사의 수: 7성사 체제의 확립과 논쟁

중세 초기에는 성사의 수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었다. 다양한 의식과 예식들이 성사로 간주되었고, 그 수도 2개에서 30개까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스콜라 신학의 발전과 함께 성사의 수는 점차 7가지(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12세기 신학자 피터 롬바르드(Peter Lombard)는 그의 저서 『명제집』(Sentences)에서 7성사를 체계적으로 제시했고, 이는 이후 스콜라 신학의 표준적인 성사 목록이 되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7성사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각 성사의 의미와 효과를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7성사 체제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퀴나스는 7성사가 인간 삶의 모든 중요한 단계와 측면을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세례는 영적 생명의 시작, 견진은 영적 성숙, 성체는 영적 양식, 고해는 영적 치유, 병자는 육체적 고통 중의 영적 강화, 성품은 교회 공동체 봉사를 위한 권능, 혼인은 가정 생활의 성화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성사 체계는 인간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고 성화될 수 있다는 신학적 비전을 반영한다.


그러나 7성사 체제에 대한 비판도 존재했다. 일부 신학자들은 7성사 중 일부가 성경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성사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발도파(Waldensians)와 카타리파(Cathars)는 고해성사와 혼인성사를 부정했고,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와 얀 후스(Jan Hus)는 성체성사의 실체변화설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성서의 권위와 교회 전통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성사가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가 발전시킨 것도 진정한 성사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권위와 성서 해석의 원칙에 관한 더 넓은 신학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7성사 체제는 중세 교회의 삶과 구조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성직자 중심의 교회 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성사가 성직자에 의해서만 집례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사 체계는 자연스럽게 성직자의 권위와 역할을 강화했다. 이는 후에 종교개혁가들이 비판하게 되는 주요 지점 중 하나였다.


성찰적 질문들

성만찬 논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스도의 현존 방식에 대한 다양한 견해는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고, 성만찬의 풍성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을까?


7성사 체제는 성사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교회 생활을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성사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제도화된 성사 체계가 가진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성사의 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성사 체제를 고수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성사의 범위를 재정립해야 할까? 특히 디지털 시대, 글로벌 팬데믹, 생태 위기 등 새로운 도전 앞에서 성사의 의미와 범위는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까?


4. 종교개혁 시대의 논쟁: 루터, 츠빙글리, 칼뱅

16세기 종교개혁은 성사론 논쟁에 있어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등 주요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성사 이해와 실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신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4.1. 루터의 성사론: 말씀과 믿음의 강조, 2성사론

마르틴 루터는 성사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담긴 표징"으로 이해했다. 그는 성사의 효력이 성사 자체의 객관적인 능력(ex opere operato)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자들의 믿음(ex opere operantis)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에게 있어 성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도구이지만, 그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루터의 성사론은 그의 핵심 신학 원리인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와 "오직 은혜로"(sola gratia)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루터에게 성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물질적 요소와 결합하여 신자의 믿음을 강화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는 수단이었다. 이는 중세 교회가 성사를 통해 은혜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루터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7성사 중 세례와 성만찬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사라고 주장하며, 나머지 5개 성사(견진, 고해, 병자, 성품, 혼인)는 성사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특히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한다는 실체변화설을 강하게 비판하고,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옹호했다. 공재설은 빵과 포도주 안에, 빵과 포도주와 함께, 빵과 포도주 아래에(in, with, and under)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주장이다.


루터의 성사론은 단순히 교리적 개혁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 구조와 구원론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의미했다. 그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며 모든 신자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고, 성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성사를 통제함으로써 신자들의 구원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중세 교회의 권위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4.2. 츠빙글리의 성사론: 상징설, 기념설

울리히 츠빙글리는 루터보다 더 급진적인 성사 이해를 제시했다. 그는 성사를 단순한 상징, 즉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를 나누는 표징으로 이해했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부정하고,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츠빙글리의 상징설은 단순히 성만찬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더 넓은 신학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영과 육, 하늘과 땅 사이의 구별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육체는 하늘에 있으므로 동시에 빵과 포도주 안에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그의 이해, 그리고 성령의 역할에 대한 강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츠빙글리의 성사론은 성사의 객관적, 물질적 측면을 약화시키고, 신자들의 주관적, 영적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성사를 통해 실제로 은혜를 받는다는 전통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이것이 성만찬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영적 교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츠빙글리의 상징설은 당시 많은 급진적 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침례교(성사/성례 대신 의식(ordinance, 규례)이라는 단어를 사용함), 회중교회 등 다양한 개신교 교파의 성사 이해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그의 접근은 성사의 외적 형식보다 내적 의미와 영적 실재를 강조하는 개신교 영성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


4.3. 칼뱅의 성사론: 영적 임재설, 성령의 역사 강조

장 칼뱅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중간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성사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외적인 표징"으로 정의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신자들이 영적으로 연합하는 통로로 이해했다. 칼뱅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빵과 포도주 안에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신자들의 영혼에 현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영적 임재설).


칼뱅의 성사론은 그의 포괄적인 신학 체계,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교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성사는 단순한 상징이나 의식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실제로 연합하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칼뱅은 성만찬에서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진정으로 참여한다고 믿었지만, 이는 물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신비롭고 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칼뱅은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성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객관적인 도구이지만, 그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칼뱅은 성사를 통해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격려받는다고 보았다.


칼뱅의 성사론은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비적 이해와 성령의 역할 강조, 그리고 성사의 공동체적, 윤리적 차원에 대한 강조 등을 통해 독특한 기여를 했다. 그의 접근은 개혁교회(장로교) 전통의 성사 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개신교 교단의 성사론에 중요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성찰적 질문들

종교개혁가들의 성사론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성사 이해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그 차이는 단순히 신학적인 문제였을까, 아니면 더 깊은 신앙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었을까? 특히 구원론, 교회론, 인간론 등 더 넓은 신학적 맥락에서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루터, 츠빙글리, 칼뱅의 성사론은 각각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성사 이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의 다양한 접근 방식은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고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 시대의 성사론 논쟁은 교회 분열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성서적 성사 이해를 회복하고, 신앙의 역동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성사론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분열의 원인이 아닌, 대화와 상호 이해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5. 동방 정교회의 성사론: 신비와 변형의 신학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사론 논쟁에 집중하다 보면 간과하기 쉬운 것이 동방 정교회의 독특한 성사 이해이다. 동방 정교회는 성사를 '신비'(mysteries)로 이해하며, 서방 교회의 법적, 형이상학적 접근과는 다른 신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5.1. 신비로서의 성사: 형이상학적 설명을 넘어서

동방 정교회는 성사를 '신비'(mysteries)로 부르며, 이는 단순한 용어 차이가 아니라 성사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을 나타낸다. 정교회 신학에서 성사는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고(theosis, 신화),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통로이다.


정교회는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믿지만, 서방의 실체변화설과 같은 형이상학적 설명보다는 그 변화의 신비적 성격을 강조한다. "어떻게" 변화되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변화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접근은 성사의 본질을 지적으로 분석하고 정의하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참여하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한다.


정교회 신학자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은 성사를 "하나님 나라의 현존과 도래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했다. 여기서 '상징적'이란 단순히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실재를 실제로 현존하게 하고 참여하게 하는 의미이다. 성사는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현재와 영원, 인간과 신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사건이다.


5.2. 우주적 비전: 창조 세계의 성화

동방 정교회는 성사를 통해 전체 창조 세계가 거룩하게 되고 변형된다는 우주적 비전을 제시한다. 성사는 단순히 개인의 구원이나 교회 공동체의 건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회복과 완성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물, 빵, 포도주, 기름 등 성사에 사용되는 물질적 요소들은 단순한 도구나 매개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거룩한 매개체가 된다. 정교회의 성사 이해는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 생태신학과 공명하는 부분으로, 성사를 통한 창조 세계의 회복과 완성이라는 관점을 제공한다. 정교회의 성사론은 환경 위기 시대에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과 돌봄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5.3. 성사와 교회: 교회 자체가 성사

동방 정교회에서 교회 자체는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사"로 이해된다. 교회는 단순히 성사를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현존하는 신비로운 실재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사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한다.


정교회의 성사 생활은 깊이 예전적(liturgical)이며, 예배와 성사가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성찬례(Divine Liturgy)는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의 중심으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서로와 연합하며, 세상을 위한 증인이 되는 총체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성사적 교회론은 교회의 제도적, 조직적 측면보다 신비적, 변형적 측면을 강조하며,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과의 친교(communion)로 이해한다. 이는 서방 교회의 더 법적, 제도적 교회 이해와는 다른 접근이다.


성찰적 질문들

동방 정교회의 성사 이해는 서방 교회(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사론에 어떤 보완적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 특히 '신비'로서의 성사 이해는 지나치게 이성적, 분석적이 된 서방 신학에 어떤 균형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정교회의 우주적 성사 비전은 현대의 생태 위기와 환경 문제에 어떤 신학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 성사를 통한 창조 세계의 성화라는 관점은 오늘날 우리의 생태적 책임을 어떻게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가?


동서방 교회의 성사론적 대화는 어떻게 더 풍성하고 포괄적인 기독교 성사 이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에큐메니컬 대화에서 동방 정교회의 성사론적 통찰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6. 현대의 논쟁: 다양성 속의 일치 추구

현대 성사론 논쟁은 종교개혁 시대의 논쟁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적 상황과 신학적 조류에 따라 다양한 쟁점들을 포괄한다.


6.1.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 ex opere operato vs. ex opere operantis

성사의 효과가 성사 자체의 객관적인 능력(ex opere operato)에 기인하는가, 아니면 성사를 받는 사람의 믿음과 자세(ex opere operantis)에 달려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이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ex opere operato를 강조해 왔지만, 현대 신학에서는 성사 수혜자의 능동적인 참여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칼 라너(Karl Rahner): 성사를 "교회의 자기실현"으로 이해하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근본 성사"(Ursakrament)라고 보았다. 그는 성사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통합하여, 성사가 개인의 실존적 결단과 신앙 고백을 통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라너는 성사가 단순히 은혜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전달(self-communication)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성사는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특권적인 장소이자,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 역사 안에서 구체화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사의 객관적 효력과 주관적 수용 사이의 이분법을 넘어서, 둘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에드워드 쉴레벡스(Edward Schillebeeckx): 성사를 "만남의 사건"으로 규정하고, 성사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신앙을 심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통로라고 강조했다.


쉴레벡스는 성사를 통해 과거의 구원 사건(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현재화되고, 신자들이 그 사건에 실제로 참여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성사는 단순한 기념이나 상징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을 초월한 사건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사의 역사적 차원과 종말론적 차원을 함께 강조한다.


현대 신학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통해,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대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측면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은혜와 믿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반영한다.


6.2. 성사와 교회: 성사의 교회 구성적 의미, 성사 공동체

현대 교회론은 성사의 교회 구성적 의미를 강조한다. 성사는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교회 헌장 1항)는 선언은 교회를 "보편적 구원의 성사"로 이해하는 현대 가톨릭 신학의 핵심 통찰을 반영한다.


이 공의회는 교회를 단순히 제도적, 위계적 조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인간의 친교(communion)의 성사"로 재정의했다. 이러한 이해는 교회의 본질을 권위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사랑과 친교의 관계로 보는 관점의 전환을 의미한다. 성사는 이러한 친교를 가능하게 하고 강화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개신교 신학: 성만찬을 통해 교회의 일치와 친교를 경험하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다는 성서적 가르침을 강조하며, 성사의 공동체적 차원을 강조한다.


현대 개신교 신학, 특히 에큐메니컬 대화에 참여하는 신학자들은 성사가 단순히 개인의 영적 경험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핵심적인 요소임을 재발견하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른 일부 개신교 성사 이해를 교정하는 중요한 발전이다.


이러한 성사적 교회론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교회는 단순히 신자들의 모임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존이 세상에 드러나는 성사적 실재이며, 성사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핵심적인 방식이다.


6.3. 성사와 세상: 성사의 사회적, 윤리적, 생태적 차원

현대 신학은 성사의 사회적, 윤리적, 생태적 차원을 강조한다. 성사는 단순히 개인의 영적 성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창조 질서를 구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신학: 성만찬을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 정의와 해방을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등 해방신학자들은 성만찬을 단순히 영적인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위한 예언자적 행위로 이해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와 희생의 요청으로 들린다. 성만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불의한 사회 구조에 저항하고, 모든 이를 위한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삶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신학: 세례의 물,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 등 성사에 사용되는 자연적 요소들을 통해 창조 세계와의 깊은 연관성을 깨닫고, 생태적 책임감을 고취한다.


살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 로즈마리 루더(Rosemary Radford Ruether) 등의 생태신학자들은 성사가 인간과 자연,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깊은 상호 연관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성사에 사용되는 물, 빵, 포도주, 기름 등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존중과 돌봄을 요구하는 신성한 선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사는 생태적 회심과 환경 정의를 위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페미니스트 신학: 전통적인 성사 이해와 실천에 내재된 가부장적 요소들을 비판하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하는 성사론을 발전시킨다.


엘리자베스 존슨(Elizabeth Johnson), 레티 러셀(Letty Russell) 등의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은 성사가 어떻게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배제해 왔는지 분석하고, 보다 포용적이고 해방적인 성사 이해를 모색한다. 그들은 특히 성사의 언어와 상징, 집례 방식 등에서 여성의 참여와 대표성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현대 신학적 접근들은 성사가 단순히 교회 안의 의식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 가치를 구현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성사는 개인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 생태적 온전함, 인간 존엄성의 실현을 위한 신학적 자원이 된다.


6.4. 에큐메니컬 대화: 성사 이해의 일치를 위한 노력

분열된 교회들은 성사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왔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례, 성만찬, 직제"(BEM) 문서는 성사에 대한 다양한 교파적 이해를 종합하고, 공동의 합의점을 도출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1982년에 발표된 BEM 문서는 세례와 성만찬에 관한 교회들 간의 기본적인 일치점을 확인하고, 남아있는 차이점들을 명확히 했다. 이 문서는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회로의 입교로 이해하며,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기념, 성령의 초대,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설명한다. 또한 이 문서는 성사를 집례하는 직제(ministry)에 관한 논의도 포함하고 있다.


BEM 문서 이후, 다양한 양자간, 다자간 대화가 이어졌으며, 특히 루터교-로마 가톨릭 간의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JDDJ: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1999)은 종교개혁 이후 가장 첨예한 신학적 갈등 중 하나였던 칭의론에 관한 중요한 합의를 이루었다. 공동선언은 칭의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칭의에 있어서 믿음과 행위의 관계, 칭의와 성화의 관계 등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약간의 입장 차이가 남아있었으나 간접적으로 성사론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진전이었다.


에큐메니컬 대화는 성사에 대한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진시키고, 때로는 제한적이나마 성사의 상호 인정과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많은 교회들이 서로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 상황에서는 제한적인 성찬 공유(eucharistic sharing)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도전과 과제가 남아있다. 성사의 본질과 효력, 성사 집례자의 자격, 성사 참여의 조건 등에 관한 근본적인 차이들은 완전한 성사적 일치를 어렵게 만든다. 특히 성찬의 상호 인정과 공유는 여전히 많은 교회들 사이에서 민감한 문제로 남아있다.


6.5. 온라인 성찬의 가능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기된 새로운 논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예배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성찬의 가능성과 그 신학적 의미에 대한 논쟁이 새롭게 부상했다. 온라인 성찬은 성사의 본질(말씀과 물질의 결합, 공동체성)을 훼손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는 유효한 성사 집례 방식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며, 다양한 신학적, 목회적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온라인 성찬 찬성 입장: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디지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여 온라인 성찬의 신학적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성령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초대 교회에서도 다양한 상황(가정, 감옥, 병상 등)에서 성찬이 거행되었음을 상기시키며, 온라인 성찬이 이러한 유연성의 현대적 표현이라고 본다.


온라인 성찬 반대 입장: 다른 신학자들은 성사의 물질성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온라인 성찬에 반대한다. 그들은 성사가 본질적으로 물리적 요소(빵, 포도주)와 공동체의 실제 모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적절히 구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온라인 성찬이 성사의 신비를 기술적으로 단순화하고, 개인주의적 신앙 실천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대안적 접근: 일부는 온라인 성찬을 정규 성찬의 대체물이 아닌 팬데믹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의 임시적 조치로 이해한다. 또 다른 이들은 '영적 성찬'(spiritual communion)이나 '갈망의 성찬'(communion of desire)과 같은 대안적 실천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논쟁은 단순히 실용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사의 본질, 교회의 본성,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신학적 도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 또한 이는 성사론이 고정된 교리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과 도전 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재해석되는 살아있는 신학임을 보여준다.


6.6. 성사와 디지털 시대: 더 넓은 맥락에서의 고찰

온라인 성찬 논쟁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성사의 '물질성'과 '공동체성'이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더 깊은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VR(가상현실)이나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성사 거행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조건에서인가?


디지털 기술은 인간 존재와 공동체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 대면 관계와 온라인 관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성사의 의미와 실천은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까?


일부 신학자들은 디지털 매체가 새로운 형태의 '성사적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환경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와 관계를 창조하는 새로운 상징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매체를 통한 성사적 경험은 전통적인 성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디지털 매체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성사는 본질적으로 육체적, 감각적 경험이며,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전인격적 참여를 충분히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매체는 종종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데, 이는 성사의 공동체적, 변혁적 본질과 충돌할 수 있다.


이 논의는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사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재와 공동체에 관한 더 깊은 신학적, 철학적 질문들을 포함한다. 이는 성사론이 현대의 기술적, 문화적 변화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탐구이다.


성찰적 질문들

현대 성사론 논쟁은 과거의 논쟁과 어떤 연속성과 차이를 보이는가? 새로운 쟁점들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디지털 기술, 글로벌화, 다원주의 등 현대적 상황이 성사론에 어떤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는가?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성사의 은혜는 어떻게 개인의 삶과 신앙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에서 성사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교회는 성사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할 수 있을까? 성사의 사회적, 윤리적, 생태적 책임은 무엇인가? 특히 불평등, 인종차별, 성차별, 환경 파괴 등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성사론은 어떤 응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온라인 성찬은 성사의 본질을 훼손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가? 비대면 시대에 성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디지털 환경에서의 성사적 경험은 어떻게 이해되고 평가될 수 있는가?


7. 한국 교회의 성사론적 도전과 과제

한국 교회는 서구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받은 성사 이해와 실천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수용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독특한 도전과 과제가 제기되었다.


7.1. 문화적 맥락과 성사론: 유교적 제사 문화와 기독교 성찬

초기 한국 교회에서 조상제사 문제가 큰 논쟁이 되었듯이, 성찬의 의미를 한국적 문화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유교적 제사 문화와 기독교 성찬 사이에는 표면적인 유사점(음식을 나누는 의례, 기념과 추모의 성격 등)이 있지만, 그 신학적 의미와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강조하며 제사 참여를 금지했지만, 이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조상에 대한 불효로 인식되어 기독교 수용의 장벽이 되기도 했다.


현대 한국 교회는 이러한 문화적 긴장을 창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예를 들어, 추모예배나 기념예배를 통해 조상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한국적 가치를 기독교적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성찬의 의미를 한국적 공동체 문화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단순히 서구 신학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 한국적 문화와 영성에 뿌리내린 독창적인 성사 이해와 실천을 발전시키는 과제를 제시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자원이 될 수 있다.


7.2. 교회의 분열 현실과 성사의 일치적 의미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뉜 한국 교회에서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라는 성서적 가르침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도전적인 과제이다.


한국 개신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분열을 경험해왔으며, 이는 종종 성사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차이로 이어졌다. 일부 교단은 매주 성찬을 거행하는 반면, 다른 교단은 일 년에 몇 번만 성찬을 거행한다. 또한 세례의 방식(침례, 세례, 물뿌림 등), 유아세례의 인정 여부, 성찬 참여의 조건 등에 관해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열 상황에서 성사는 역설적으로 교회 일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연합(NCCK)과 같은 에큐메니컬 기구를 통한 대화, 공동 예배와 성찬 참여, 상호 세례 인정 등의 노력은 분열을 넘어 일치를 추구하는 중요한 시도이다.


특히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성찬의 에큐메니컬적 의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성사를 통한 교회 일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발전이다.


7.3. 성장주의와 성과주의 속의 성사론

한국 교회의 성장주의와 성과주의적 경향 속에서, 성사가 때로는 형식적인 의례로 축소되거나, 반대로 영적 체험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이 있다.


급속한 교회 성장을 경험한 한국 교회에서는 종종 성사의 깊은 신학적 의미보다 외적인 형식이나 효율성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세례식이나 성찬식이 교회의 성장과 성공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반면, 일부 교회에서는 성사의 객관적, 제도적 측면을 경시하고, 개인적인 영적 체험과 감정적 고양만을 강조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성사의 공동체적, 역사적 차원을 약화시키고, 성사를 개인의 주관적 경험으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성사의 균형 잡힌 이해와 실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사의 객관적 효력과 주관적 체험, 제도적 형식과 영적 내용, 전통적 가르침과 현대적 적용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성숙과 깊이를 추구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7.4. 디지털 시대의 한국 교회와 성사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디지털 기술 보급률과 인터넷 사용률을 가진 국가 중 하나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예배와 성사에 관한 논의가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많은 한국 교회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예배를 도입했고, 일부는 온라인 성찬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성사의 본질, 특히 물리적 임재와 공동체성의 중요성에 관한 신학적 질문을 제기했다.


한국의 독특한 디지털 문화 맥락에서, 성사의 의미와 실천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성사의 가치를 전달하고, 동시에 성사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는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단순히 서구 신학의 논의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독특한 디지털 문화와 교회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성사론적 통찰을 발전시킬 기회를 가지고 있다.


성찰적 질문들

한국 교회의 성사 이해와 실천은 어떻게 한국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는가? 성사의 한국적 상황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분열된 한국 교회 상황에서, 성사는 어떻게 교회 일치와 연합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교파와 교단의 경계를 넘어 성사적 교제를 나누기 위한 실천적 방안은 무엇인가?


한국 교회의 성장주의와 성과주의를 넘어, 성사의 깊은 신학적 의미와 변혁적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성사 교육과 예배 갱신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한국 교회에서, 성사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성사의 본질적 요소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8. 결론: 성사론 논쟁의 현재, 그리고 미래

성사론 논쟁은 초대 교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져 온, 깊고도 복잡한 주제이다. 성사의 본질, 구성 요소, 효과, 목적,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 등 다양한 쟁점을 둘러싼 논쟁은 때로는 교회의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성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신앙의 역동성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8.1. 과거의 유산, 현재의 도전

과거의 성사론 논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 도나투스파 논쟁은 성사의 객관성과 은혜의 보편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고, 중세 성만찬 논쟁은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통찰력을 제공했으며, 종교개혁 시대의 논쟁은 성경적 성사 이해를 회복하고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방 정교회의 성사론은 성사의 신비적, 변형적 차원을 강조하며 서방 신학을 보완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여전히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성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균형, 성사의 교회 구성적 의미, 성사의 사회적·윤리적·생태적 차원, 에큐메니컬 대화,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성사 실천 등 다양한 쟁점들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현대의 도전은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세속화, 다원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 디지털 혁명 등의 현상은 성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사론은 단순히 과거의 교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성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8.2. 미래를 향한 제언

미래의 성사론 논쟁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성서적 기초 강화: 성서적 근거를 확고히 하고,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이 있는 주석과 해석을 통해 성사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특히 현대 성서학의 다양한 방법론(역사-비평적, 문학적, 사회학적, 수용사적 접근 등)을 활용하여 성사 관련 본문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


역사적 성찰: 과거의 성사론 논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역사적 맥락과 신학적 함의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교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리가 형성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


에큐메니컬 대화: 분열된 교회들 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성사 이해의 공통분모를 찾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는 교리적 차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더 깊은 일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현대적 상황과의 대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문화적 다양성, 생태 위기, 디지털 기술 발전, 사회 정의 등)에 대한 성사론적 응답을 모색하고, 성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사론은 단순히 교회 내부의 교리적 논의가 아니라, 현대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도전에 응답하는 살아있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실천적 적용: 성사 교육, 예배 갱신, 사회 참여 등 실제 목회 현장에서 성사의 의미를 구현하고,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성사론은 추상적인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천적 신학이 되어야 한다.


문화적 상황화: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성사의 의미와 실천을 재해석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서구 중심적 신학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의 고유한 관점과 경험을 성사론에 통합하는 과정이다.


디지털 시대의 성사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가상 환경의 확장이 성사의 이해와 실천에 미치는 영향을 신학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존재, 공동체, 현존, 물질성 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포함한다.


생태적 성사론: 생태 위기 시대에 성사가 어떻게 창조 세계와의 연결성과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성사에 사용되는 물, 빵, 포도주 등의 자연적 요소들은 인간과 자연의 깊은 상호 의존성을 상기시키며, 생태적 회심과 창조 보전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8.3. 성사론 논쟁의 영속적 가치

성사론 논쟁은 단순한 교리적 다툼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관한 지속적인 대화와 성찰의 과정이다. 이 논쟁은 다음과 같은 영속적 가치를 지닌다:


신학적 깊이: 성사론 논쟁은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기독교 신학의 핵심 주제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성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기독교 신앙 전체에 대한 더 풍성한 이해로 이어진다.


영적 성숙: 성사론 논쟁은 단순히 지적인 논의가 아니라, 신자들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다. 성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는 더 의미 있고 변화적인 성사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교회 일치: 성사론 논쟁은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교회 일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성사에 대한 상호 이해와 존중은 분열된 교회들 사이의 대화와 화해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문화적 대화: 성사론은 기독교 신앙과 다양한 문화적 맥락 사이의 창조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성사의 상징과 의미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으며, 이는 기독교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화한다.


사회적 변혁: 성사론은 개인의 영적 경험을 넘어, 사회 정의와 변혁을 위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세상을 향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8.4. 마무리

성사론 논쟁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는 성사의 신비가 인간의 완전한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이며, 또한 성사가 항상 새로운 상황과 도전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인간 역사와 경험 속에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방식이며, 이 신비는 어떤 신학적 정식화도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이시듯 하나님의 무한한 실재는 신비로 남아야 한다. 성사가 신비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현실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우리는 성사론 논쟁을 통해 성사의 의미와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다. 이 논쟁은 우리에게 성사가 단순한 의례나 전통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하는 특권적인 통로임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우리는 성사론 논쟁의 풍성한 유산을 물려받고,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의 과제는 과거의 통찰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의 상황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충실한 성사 이해와 실천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사는 계속해서 교회의 일치와 갱신, 신자들의 영적 성장,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성찰적 질문

성사론 논쟁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가? 우리는 과거의 논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의 논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성사론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신학적 미성숙의 표시인가, 아니면 성사의 풍성한 의미와 계속되는 관련성의 증거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성사론 논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어떤 성사 이해와 실천을 통해 교회의 일치와 갱신,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적 맥락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성사론적 통찰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성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고 있는가? 나의 성사 경험은 나의 신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하고, 교회 공동체와 의미 있게 연결되며, 세상 속에서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