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장: 거룩한 멈춤, 하나님의 숨결

출애굽기 31장: 거룩한 멈춤, 하나님의 숨결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 이는,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1:17) 출애굽기 31장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기나긴 성막 건축 지침이 마무리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성소와 기물, 제사장 의복 등 거룩한 공간을 위한 세밀한 설계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황한 말씀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왜 거룩한 건축 지침의 끝자락에 안식일을 두셨을까요? 안식일 규정이야말로 모든 성막 기구와 제도가 지향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이나 제사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곧 안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안식일 규정이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새겨주신 증거판을 통해 성문화(Codification)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안식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영원불변한 계약이자 표징임을 확증하는 기적 같은 사건입니다. 거룩한 공간(성막)은 결국 거룩한 시간(안식)을 품을 때 완성됩니다. 본문 17절은 충격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숨을 돌렸다'는 히브리어 '바이나파쉬'는 막 달리기를 마친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그립니다. 안식일은 노동을 중단하는 소극적인 정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호흡 리듬에 나의 가쁜 호흡을 튜닝하는 적극적인 생명 활동입니다. 창조 때 흙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던(창 27) 그 하나님이, 안식일에 스스로 숨을 돌리시고(출 3117),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

출애굽기 30장: 거룩의 방향성

출애굽기 30장: 거룩의 방향성 "거기에 닿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30:29) 하나님은 가난하지 않으시다. 그분께는 향기로운 냄새도, 값비싼 기름도, 심지어 우리의 목숨 값인 반 세겔의 은도 필요치 않으시다. 그러나 출애굽기 30장은 이 모든 물질들에 '거룩'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아 회막으로 가져오라고 명한다. 왜 하나님은 인간의 생존 필수품인 이 물건들을 탐내시는가? 거룩(Kadosh)은 물질의 화학적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흐르는 '방향'이다. 향품과 기름이 자기를 치장하고 과시하는 데 쓰일 때 그것은 사치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 즉 '회막'을 향할 때 비로소 거룩한 성물이 된다. 오늘날의 회막은 어디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장소를 명확히 지목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정교한 레시피는 제의적 연금술이 아니라, 사랑의 분배 공식이다. 반 세겔이 없어 생존을 위협받는 이에게 속전이 되어 주는 것, 악취 나는 삶의 자리에 존엄이라는 향기를 입혀주는 것, 상처 입은 영혼에 치유의 기름을 붓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요구하신 '씻음'이자 '기름 부음'이다. 이 나눔이 멈춘 성소는 위험하다. 제사장이 손발을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듯,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공급이 차단된 교회는 겉으로는 살아 있는 듯하나 실상은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 '고르반'이라는 핑계로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거룩을 가장한 죽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물과 기름과 향기는 흘러야 한다. 그것이 닿는 곳마다 거룩해지리라는 약속(29절)은 오직 사랑으로 흐를 때에만 유효하다.

출애굽기 29장: 희생, 거룩, 그리고 소망

출애굽기 29장: 희생, 거룩, 그리고 소망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머물면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출애굽기 29:45)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 위임식을 다룬다. 아론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에 야훼께 성결(קֹדֶשׁ לַיהוָה)이라 새긴 성직패를 붙인다(6절). 이 성직패에는 이중의 방향이 담겨 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이 사람은 당신께 속한 자입니다"라는 헌신의 고백이고, 인간을 향해서는 "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이 너희에게 임한다"는 중재의 선언이다. 그러나 제단은 다른 방식으로 거룩해진다. 제단은 이레 동안 날마다 수송아지 한 마리의 속죄제물을 받아야 한다(36-37절). 제사장은 기름부음으로, 제단은 피 흘림으로, 방법은 다르나 그 공통분모는 희생이다. 히브리어 כָּפַר(kipper, 속하다)의 원래 의미는 "덮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당신의 희생으로 덮으신다. 바울은 이 덮음의 논리를 칭의(Justification)로 읽어냈다: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λογίζομαι)"(롬 4:3). 레위기적 제의는 복음의 원형이다. 42-43절은 이 모든 제의의 목적을 선언한다: "내가 거기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고... 거기에서 나의 영광을 나타내어 그 곳이 거룩한 곳이 되게 하겠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희생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시간은 희생이 발생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45절의 약속은 단wl 장소적 임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영원히 희생하시겠다는 약속이다. 희생의 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호혜적 계약도 아니다. 희생의 끝은 오직 하나님의 의지적 관철이다. 하나님이 희생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 희생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래서 희생은 은혜이다. 인간 편에서는 어떠한가? 응답하는 자에게도, 거부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경계가 없다. 이...

출애굽기 28장: 제사장, 영광의 무게를 견디는 자

출애굽기 28장: 제사장, 영광의 무게를 견디는 자 "아론이 성소로 들어갈 때에는... 가슴에 달고 들어가게 하여, 이것을 보고 나 주가 언제나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하여라." (출애굽기 28:29) 제사장은 무엇으로 사는가? 출애굽기 28장은 제사장의 화려한 의복을 묘사하지만, 그 본질은 '장식'이 아닌 '멍에'에 가깝습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흉패가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이 묵직한 보석들을 가슴(심장)에 달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기억(Zikaron)'하시게 하는 장치이자, 제사장 자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망각하지 않게 하는 거룩한 짐입니다. 또한 그의 이마에는 '주님의 성직자(Holy to the LORD)'라는 순금 패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고귀함을 과시하는 명찰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 패의 기능이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Bear)하게 하는 것"(38절)이라고 말합니다. 즉, 제사장의 거룩은 백성의 불완전함을 덮어주는 '대속적 거룩(Vicarious Holiness)'입니다. 나의 깨끗함으로 너의 더러움을 덮어주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말"이 되는 지점입니다. 히브리어로 '영광(Kabod)'은 '무거움'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옷이 그토록 영화롭고 아름다운(2절) 이유는, 그가 짊어진 사명의 무게가 그토록 무겁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바울이 자기 생명을 걸고 백성을 위해 탄원했던 것처럼, 참된 성직은 '영광의 무게'를 기꺼이 어깨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거룩한 직분을 한낱 명예나 권력처럼 '가볍게' 여기는 태도일 것입니다.

출애굽기 27장: 꺼지지 않는 등불, 깨어있는 중보자

출애굽기 27장: 꺼지지 않는 등불, 깨어있는 중보자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서 꺼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출애굽기 27:21) 성막의 뜰을 만드는 규례 뒤에, 갑자기 등불에 관한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장 순수한 기름, 즉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등불을 늘 켜 두어라." 등불은 '휘장 밖, 증거궤 앞'이라는 절묘한 좌표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보좌(지성소)와 제사장의 일터(성소)가 만나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입니다. 이 불빛은 우리에게 이중적 질문을 던집니다. "빛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또 다른 빛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이 빛은 단지 깜깜한 성소를 밝히기 위한 횃불일까요?" 이 등불은 어둠 속에서 인간의 필요(Guidance)와 하나님의 영광(Glory)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성경은 이를 '주 앞에서(Coram Deo)' 끊어지지 않아야 할 중보의 불꽃으로 규정하며 이분법을 넘어섭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제(제사장)의 본질적인 위치를 발견합니다. 예배학적으로 이는 두 가지 방향성을 동시에 가집니다. 하나는 '아드 오리엔템(Ad Orientem, 동쪽을 향하여)'입니다. 사제가 회중을 대표해 등불을 들고 하나님(언약궤)을 향해 서는 중보의 자세입니다. 다른 하나는 '베르수스 포풀룸(Versus Populum, 회중을 향하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회중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등불은 바로 이 긴장 속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는 타오르는 '예배'가 되고, 사람을 향하여는 길을 비추는 '인도'가 됩니다. 이 등불을 켜기 위해 올리브는 으깨지고 짓이겨져야 했습니다(beatend oil). 자기를 깨뜨려...

출애굽기 26장: 성막, 그 이중의 보호막

출애굽기 26장: 성막, 그 이중의 보호막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는 속죄판으로 덮어라." (출애굽기 26:34) 성막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거칠기도 합니다. 안에는 정교하게 수놓은 휘장과 황금이 빛나지만, 밖은 투박한 가죽들이 덮고 있습니다. 편집자는 특히 가장 바깥 덮개의 재료로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그 위의 '돌고래 가죽(개역개정: 해달의 가죽)'을 지목합니다. 여기서 돌고래 가죽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타하시(Tachash)는 사실 그 정체가 모호합니다. 취리히 성경(Zürcher Bibel)은 이를 굳이 번역하지 않고 "Tachasch"라고 음차합니다. 이것은 현재 언어학적 지식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신비한 재료, 광야의 살인적인 열기와 폭풍을 막아내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패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육지의 양과 바다의 타하시가 만나 성막을 덮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온 우주의 주권으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웅장한 선언입니다. 그러나 성막의 보호는 외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내부, 지성소에서도 또 하나의 덮음이 일어납니다. 바로 속죄판(Mercy Seat)입니다.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있는 증거궤는 반드시 속죄판으로 덮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먼지를 막는 뚜껑이 아닙니다. 율법의 날카로운 정죄가 밖으로 튀어나와 죄인을 삼키지 못하도록 막는 영적인 안전장치입니다. 속죄판이 없는 증거궤는 폭탄과 같아서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속죄판이 덮일 때에만, 그곳은 심판의 자리가 아닌 은혜의 보좌가 됩니다. 이처럼 성막은 이중의 보호막(Dual Shield)입니다. 밖에서는 타하시 가죽이 세상의 풍파(환경적 고난)를 막아주고, 안에서는 속죄판이 하나님의 진노(영적 심판)를 막아줍니다. 이 완벽한 이중 덮개 사이, 그 안정된 공간에 우리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뚫을 수 없는 가죽 덮개가 있고, 내 죄가 아무리 커도 뚫을 수 없는 속죄...

출애굽기 25장: 속죄판과 증거판 사이,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만남

출애굽기 25장: 속죄판과 증거판 사이,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만남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 (출애굽기 25:22) 하나님은 물질보다 마음을 원하십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행위는 물질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물질에 담긴 마음의 순도(Purity) 때문입니다. 성막을 휘감은 순금은 인간의 치장이라기보다 그곳에 임하실 하나님의 영광의 무게(Kabod)를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인간 마음의 정련된 고백입니다. 출애굽기 25장의 정점은 성막의 가장 깊숙한 곳, 지성소의 구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증거판(십계명) 위에 속죄판(Mercy Seat)을 덮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우리를 만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증거판은 차가운 법입니다. "너는 안식하라, 너는 사랑하라"고 요구하지만, 죄인 된 인간은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스스로 사탄이 되어 탐욕과 파괴를 일삼습니다. 법대로라면 심판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법 위에 '속죄의 덮개'를 씌우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패를 덮어버리고서라도, 기어이 인간을 안식의 자리로 끌고 가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고집(Divine Stubbornness)입니다. 십계명의 핵심인 제4계명(안식일)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모든 관계가 화해하고 쉬는 것입니다. 지성소는 이 안식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로 지켜내는 '제4계명 수호의 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 앞에서는 어떤 죄인도, 심지어 인간의 죄성이 형상화된 사탄적 본성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만나겠다"고 하셨다면, 그 만남을 막을 수 있는 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모든 경고와 심판의 언어들은, 결국 이 필연적인 사랑의 만남으로 우리를 교육하고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아픈 막대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