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평화 구축의 근원 (미하엘 벨커)

 이불속프로젝트 #02



프린스턴신학연구소가 '하나님 형상' 강연(기포드 강연)을 두고 미하엘 벨커와 인터뷰 한 영상이다. 
미하엘 벨커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루면서 그것을 해설하고 논증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낮은 수준의 강연이었을 것이다. 벨커는 그대신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했다. 벨커는 평화의 도구로 사는 인간이 되자고 했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 목사님이 쓴 칼럼에 성 프랜시스 일화가 나온다.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어느 날 저녁 누군가가 프랜시스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랜시스가 문을 열자 얼굴이 몹시 흉하게 일그러진 나병환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춥고 배고프다며 잠시 쉬어 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그를 방으로 안내하고 정성껏 식탁을 마련하여 대접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환자가 다시 춥다며 당신의 체온을 좀 나눠줄 수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그 나환자를 꼭 껴안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프랜시스가 눈을 떴을 때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젯밤 그 나병환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은 프랜시스는 나병환자의 모습으로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께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게 저 유명한 성 프랜시스(1182-1226)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중세 가톨릭이 정교 유착으로 온갖 특권을 다 누리며 총체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을 때 청년 프랜시스는 1207년 다미아노 교회 십자가 아래서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교회를 다시 세워라!> 그 체험 후 프랜시스는 곧 탁발 수도회를 창설하여 위대한 개혁의 첫 발을 내디딥니다. 그가 표방한 것은 다시금 복음으로 돌아가 주님처럼 청빈과 겸손과 소박한 삶을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가톨릭이 앓고 있던 심각한 세 가지 병, 즉 부와 권력과 사치에 대한 극약 처방이었습니다. <제2의 예수>라고 불렸을 만큼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성 프랜시스의 그 수도회 운동은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난 중세 가톨릭의 쇄신 움직임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는 프랜시스의 영적인 동반자였던 클라라 수녀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습니다. 성녀 클라라는 아시시의 귀족 출신으로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평생 프랜시스를 따랐습니다. 11살 연하였던 클라라 수녀는 프랜시스의 친구이자 누이이자 함께 수도의 길을 걸은 소중한 동반자였습니다. 짐승들, 새들과도 교감하며 대화했다는 청빈의 상징 성 프랜시스, 무소유의 정신으로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헌신적으로 섬겼던 그의 수도회는 견고했던 중세의 신분사회를 크게 흔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벨커가 말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깊은 뜻은 이 칼럼 속의 한 구절에 있겠다 싶다. 

"중세 가톨릭이 정교 유착으로 온갖 특권을 다 누리며 총체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을 때 청년 프랜시스는 1207년 다미아노 교회 십자가 아래서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교회를 다시 세워라!> 그 체험 후 프랜시스는 곧 탁발 수도회를 창설하여 위대한 개혁의 첫 발을 내디딥니다. 그가 표방한 것은 다시금 복음으로 돌아가 주님처럼 청빈과 겸손과 소박한 삶을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가톨릭이 앓고 있던 심각한 세 가지 병, 즉 부와 권력과 사치에 대한 극약 처방이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으나, 현대 사회는 자신이 앓고 있는 심각한 병 세 가지, 곧 부, 권력, 사치를 그 어느 것 하나 치료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고질병이요 유전병이다. 원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신학을 강의한 벨커가 온 세계 신학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바로 '평화의 사도'로 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고 하는 인간의 올바른 삶이라 강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