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롬 9:6-13)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롬 9:6-13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예언자의 마지막 말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과 희망의 선포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는 구절에서 희망을 본다. 거기서 그는 이스마엘이 이삭이 되고 에서가 야곱이 되는 생명의 법의 최종 승리를 외친다. 바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했다.
두 법의 싸움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7장까지 자신을 휘감고 있는 죄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죄의 법은 바울에게 사형판결을 내립니다. 마침내 바울은 비명을 지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구나(롬 7:24)
로마서 8장에서는 죄의 법에 따라 사형판결을 받은 바울에게 다른 법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법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자신을 해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8장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바울을 죄의 법에서 해방한 예수 그리스도의 법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맞서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7-8장에서 두 법의 구도를 그림처럼 그립니다. 한 쪽에는 죄와 사망이, 다른 쪽에는 생명과 사랑이 맞서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대립의 구도를 그리스도의 법이 죄의 법과 맞서 싸우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 싸우는 장소를 주목합니다. 두 법의 싸움은 다른 곳이 아닌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죄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이 싸움을 벌이는 장소가 다름 아닌 바울의 마음속이라는 것입니다. 두 법이 저 하늘 어느 곳이나 땅 어딘가에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고, 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가쁜 숨을 내뱉는 자신의 심령에서 싸우고 있다고 바울은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마침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겼고, 그 결과 자신은 살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두 법이 싸운 결과 자신은 사망이 아닌 생명의 판결을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누군가 생명의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9장을 읽으며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는 법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6)를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은 절대 폐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본문을 읽어내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가 작동하는 장소는 바울의 속사람 한가운데입니다(참고. 렘 31:33).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열쇠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열쇠가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을 읽는 방법
우리가 로마서 9장에서 의아한 부분은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부분입니다. 겉보기에는 이스마엘과 에서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 6절 하반절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13)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18)
바울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죄로 죽음의 신음을 하다가 8장에서 생명을 얻었다고 기뻐 소리쳤는데, 9장에 와서 다시 에서냐 야곱이냐로 고민에 빠지면 흐름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법과 생명의 법의 대결 구도를 그대로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의 구도에 적용해 읽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8장을 근거로 9장을 읽어야 혼란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9장을 8장이 실행된 결과물로 읽어야 보다 뜻 깊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죄로 허덕이는 인간 이스마엘이 생명을 얻은 이삭이 되고, 죄 가운데 헤매던 에서가 생명을 얻은 야곱이 된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스마엘과 에서가 따로 있고, 이삭과 야곱이 별개 인간이 아닙니다. 죄의 법에 매여 있던 사람도 바울이었고, 생명의 법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다며 기뻐 외치던 사람도 바울이었습니다. 죄인을 생명을 얻은 자로 만든 것이 기적이라면, 그 기적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예언자의 마지막 말이 무엇일까요? 선지자의 마지막 말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예언자의 마지막 말,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말은 용서, 구원, 해방, 생명이 마지막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마엘과 에서가 하나님의 마지막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법으로써 이스마엘을 이삭이 되게 하고, 에서를 야곱이 되게 만듭니다.
영원토록 말씀하시는 하나님
바울은 이스마엘을 이삭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바울은 에서를 야곱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의 말씀에서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 영원히 남는 사망의 저주를 이겼음을 보았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와 그리스도의 사이를 끊어낼 수 없음을 바울은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 말씀의 신실함과 굳건함을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 만세 전부터 시작되기에, 우리는 다만 ‘그분 약속이 영원하고 신실하다’고 표현할 따름입니다.
바울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8). 바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로마서 8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냐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 9장 26절에서 인용하는 호세아서의 말씀은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동시에 애달프게 만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호 1:10)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6)는 바울의 탄성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탄성을 터트리며 찬송하는 가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