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의 힘 (겔 1:1-3)

에스겔 1:1-3
에스겔의 힘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잊지 맙시다. 삶이 온통 뒤죽박죽이고 매일 매 순간 시험과 유혹을 받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은 잊지 맙시다.


에스겔의 힘의 실마리

에스겔은 바벨론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니까 그는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전 1차 포로 때 바벨론으로 잡혀온 것입니다. 본문 1-2절은 그가 포로로 끌려온 지 5년 5일이 지났고, 30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스겔은 25살 때 바벨론에 잡혀와 벌써 5년이 지나고 있었던 겁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그날부터 날수를 세면서 특별한 사건들을 메모했습니다. 그 기록이 바로 에스겔서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는 에스겔이 적은 신앙의 일기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포로의 신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나이가 서른 즈음이 되니 젊은 날 예루살렘에서 품었던 꿈이 속절없는 시간 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발 강의 운하공사에 투입되었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하루하루를 그저 포로에게 주어진 강제노역으로만 채웠다면, 오늘날 에스겔서는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에스겔에게는 내적 힘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힘이 무엇이었을까요? 

3절에서 에스겔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올 때 에스겔의 나이가 25세였으니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일을 시작할 나이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면 제사장의 직무를 배웠을 5년 동안 제사장 직무교육이 아니라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에게 제사장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사판에서 가방끈 긴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직 대기업 출신이라고 등짐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에스겔은 이대로 자기 삶이 의미 없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가 비록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사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조국의 멸망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긴 하지만 에스겔은 자신이 제사장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을 넘어서 비전을 보게 되는 그의 힘의 실마리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새록새록 깨닫게 되는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실패한 후 밀려오는 거대한 실망감을 신앙으로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성공보다 값집니다. 에스겔에게는 ‘나는 제사장이다’가 믿음의 눈이었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실패하지 않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전쟁에서는 영웅이었만 가정을 잘 관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탁월하였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은 솔로몬의 책임이 큽니다. 모든 부분에서 실패를 모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비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흔들리는 현실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포로로 잡혀 와서 청춘이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에스겔은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나는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루하루 영적인 일기를 쓰면서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가진 신앙의 진수입니다. 다윗은 시편 62편에서 세상이 크게 흔들려도 자신은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어떤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느냐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현실을 보는 것

포로생활 중에도 ‘나는 제사장’이라는 신념에 의미를 둔 믿음의 눈을 가진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하늘문을 열어보이십니다. 하늘이 열리니까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이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하늘이 쩍 벌어지면서 무언가 나타났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에스겔이 비참한 포로생활을 신앙적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하늘이 열리자 에스겔은 멸망한 조국과 포로생활을 하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전혀 다른 시각, 곧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하늘이 열리는 경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에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에게는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마지막 반환점이 지나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마저 터닝 포인트를 지나신 것은 아닙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며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렸고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는 말씀의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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