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하나님 체험 (창 28:1-19)

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10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에서와 야곱은 그들의 기질과 성품에서가 아니라 순종에서 갈린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평안보다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잦다. 하지만 바로 그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다.



창세기 저자의 의도

창세기는 창조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등을 취재한 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뉩니다.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 즈음에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 유다는 B.C. 587년 즈음에 바빌로니아에게 망합니다. 바빌로니아는 남 왕국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때부터 혹은 그로부터 70년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 때부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어쩌다 망했는지를 철저히 반성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지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음을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회개와 다시 정립한 신앙을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는데, 그 첫 번째 책이 창세기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면서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의 신앙이 어떠했는지를 현재의 자신들의 신앙을 성찰하며 기록했습니다. 창세기는 -좀 더 확장하여 모세5경은- 바빌로니아 포로기 또는 그 이후의 유다인들의 신앙고백 문서입니다. 그러면 창세기의 저자(이스라엘)가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에서와 야곱의 차이, 순종

우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그 아들 야곱으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흐름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여러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본문은 믿음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야곱 집안의 순종의 역사는 조부 아브라함부터 남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무조건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할 때도 순종했습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도 순종의 사람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목에 칼을 대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삭은 살던 곳에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피해보려고 계획했지만 하나님이 그리로는 가지 말라고 하니까 순종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삭이 외삼촌 라반이 거주하는 하란으로 가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웬일인지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말에 순응합니다. 비록 도망하는 모습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처음으로 순종하는 장면을 만납니다. 

야곱의 경우는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라 보입니다. 본문만 하더라도 야곱이 형 에서의 칼을 피해 도망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야곱이 자신의 팥죽과 형의 장자권을 두고 거래하고 마침내 아버지가 장자에게 내리는 축복까지 가로챈 후 도망가다가 노숙하는 모습입니다. 야곱이 도망가는 것과 순종이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본문을 순종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하란으로 가라는 당부와 실제로 야곱이 출발하는 본문의 장면 사이에 에서의 오만불손한 행태를 삽입합니다. 6-9절이 에서가 부모 앞에서 저지른 만행입니다. 이방인 아내를 얻지 말라는 게 부모의 당부임을 뻔히 알면서도 에서는 두 번이나 이방인을 아내로 맞는 행태를 보입니다. 이것은 이삭이 야곱에게 하란으로 가서 아내를 맞으라는 당부에 야곱이 순응한 장면과 선명히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빌어줄 복을 동생에게 주었기에 화가 나서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아내로 맞는 그의 행동은 경솔함일 뿐이지 아버지의 언행심사를 살피는 아들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성경은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하는 당부를 에서가 봤다고 합니다(6). 성경은 에서가 아버지와 야곱의 말을 들었다고 하지 않고 보았다고 하면서 에서가 아버지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본 것처럼 알고 있었으나 순종하지 않았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곧바로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다”(7)고 하면서 에서와 야곱의 차이를 더욱 드러내 보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하란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 단지 형의 칼을 피해서 도망가는 모습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종입니다.

야곱이 들은 하나님의 첫 음성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야곱에게 실크로드가 펼쳐진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살던 곳이 브엘세바인데 외삼촌이 있는 밧단아람까지는 약 850km입니다. 야곱은 순종하여 길을 떠났지만 그의 앞에는 850km나 되는 불안하고 고된 여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13)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했던 말씀을 야곱에게 그대로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불안한 여정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금 네가 딛고 선 바로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는 절대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순종해서 길을 떠났지만 노숙해야만 했던 야곱이 들은 하나님의 첫 음성입니다. 그 때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의지하던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벌어지는 상황 가운데 고난을 겪는 것이 첫 번째 현상이라면, 두 번째 현상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을 노숙하던 길 위에서 생생히 만났습니다.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돌을 세워 거기에 기름을 붓고 루스라는 그 땅의 이름을 베델로 바꿔 부릅니다. 베델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막막함과 불안만 있던 곳이 알고 보니 하나님이 계시던 곳임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바꾸어 불렀습니다. 불안이 약속으로 바뀌고, 고난이 희망으로 바뀌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것들의 극과 극 사이에 사다리를 놓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것을 보았기에 그곳 이름을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바꿔 부른 것입니다. 야곱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불안이 감쌌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길을 떠날 때 자신을 엄습해오던 불안이 약속과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리고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어디에 자신들의 신앙을 세워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모습을 그들 신앙의 초석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이 곧고 마음이 어두워 자기 욕구에 눈이 먼 야곱이 아버지의 권면에 순종하여 길을 떠나는 모습에 공감각했습니다. 창세기 저자(이스라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것과 같은 모습을 야곱에게서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비록 고통과 고난이 닥치지만 바로 거기에서 그분을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이 체험으로 얻은 지혜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야곱이 도망가다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대목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다시 세우며 삶의 지혜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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