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무는 심판 (아모스 2장)
경계를 허무는 심판
아모스 2장
4 나 주가 선고한다. 유다가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주의 율법을 업신여기며, 내가 정한 율례를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조상이 섬긴 거짓 신들에게 홀려서, 그릇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6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1. 죄의 목록, 경계 없는 타락
아모스의 사자후는 멈추지 않고 이방의 땅을 넘어 유다와 이스라엘의 심장부로 파고듭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심판의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용의 ‘동일함’입니다. 주변국의 죄악상과 유다, 이스라엘의 죄악상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억압과 착취, 인권 유린과 성적 타락.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이들의 땅에서도 죄는 아무런 경계 없이 그 흉악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모스 예언의 첫 번째 진실과 마주합니다. 죄는 경계가 없습니다. 선민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뿌리내립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그들이 이방인보다 더 악해서가 아니라, 이방인과 똑같아져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과 구별되는 빛이 되기는커녕 스스로 어둠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2. '선택'이라는 족쇄: 하나님을 가두려는 시도
죄의 보편성 앞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어막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선민사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니, 저들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고백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족쇄를 채우려는 가장 교만한 시도입니다. 보편적 공의를 행하셔야 할 하나님을 우리 민족의 수호신이라는 좁은 경계 안에 가두려는 영적 반역입니다. 죄가 경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 또한 경계가 없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선택이 하나님의 공의에 예외를 만드는 특권이라 믿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선택을 근거로 그들의 죄를 더욱 엄중히 물으십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신앙의 경계는 하나님을 막아서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표적이 될 뿐입니다.
3. 모범의 실패와 '잘못된 파생 상품'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선택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특권적 지위(Privileged Status)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모범 사례(Exemplary Role)로서의 거룩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무엇인지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세상의 모델하우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범이 되어야 할 책임이라는 원본의 가치는 내팽개치고, ‘우리는 특별하다’는 우월감만 붙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원본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허황된 기대감만 부풀린 가장 치명적이고 잘못된 파생 상품입니다. 그들은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아넘기면서도, 이 위험한 신학적 상품에 투자하며 자신들의 영적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습니다. 아모스의 심판 선고는 바로 이 신학적 거품의 붕괴를 알리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4. 가장 아픈 심판, 가장 깊은 사랑의 회복
하나님은 왜 그토록 아프게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실까요? 그것은 단순한 분노나 징벌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잘못된 파생 상품이라는 거짓된 정체성을 파괴하고, 거룩한 모범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회복시키려는 고통스러운 사랑의 수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스스로 만든 특권이라는 감옥의 문을 부수고, 온 세상을 향한 책임이라는 광활한 사명의 땅으로 다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아모스 2장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아픈 사랑 고백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 누구보다 깊이 알았기에(암 3:2), 너희의 배신이 가장 아프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의 그 거짓된 껍데기를 깨뜨려서라도 너희를 다시 내게로 돌이키겠다.” 사자의 포효는 오늘 우리의 신앙이 가진 그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