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8: 놋거울, 나를 비추던 시선을 녹이다

출 38: 놋거울, 나를 비추던 시선을 녹이다

"그는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쇠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회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이 바친 놋거울로 만든 것이다." (출애굽기 38:8)

성막을 짓는 데는 많은 금과 은, 그리고 화려한 색실들이 들어갔습니다. 그 고귀한 재료들이 성막의 위엄을 드러내는 동안, 성막 뜰 한구석에는 다소 이질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기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는 물두멍입니다. 성경은 이 물두멍의 재료가 땅에서 캐낸 광석이 아니라, 회막 문에서 봉사하던 여인들의 손에 들려 있던 놋거울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거울은 본질적으로 가장 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도구입니다. 거울의 유일한 목적은 나를 비추는 것입니다. 나의 얼굴, 나의 단장, 나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거울을 듭니다. 그 좁은 네모난 세상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그 거울을 내놓았습니다.

용광로에 들어간 놋거울들은 뜨거운 불 속에서 그 형태를 잃고 녹아내렸습니다. 나를 비추던 표면은 사라지고, 이제는 제사장들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커다란 대야가 되었습니다. 나의 아름다움(Private Beauty)을 위해 존재하던 도구가, 공동체의 죄를 씻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공적인 거룩함(Public Holiness)의 도구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봉헌의 의미일 것입니다.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친밀한 것을 내어놓아 더 넓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드릴 금이나 은, 혹은 뛰어난 재능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놋거울은 어쩌면 돈일 수도, 혹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브살렐의 정교한 기술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회막 문을 지키던 여인들의 성실함, 그 손때 묻은 일상의 도구를 원하십니다.

오늘 나의 손에 들린 놋거울은 무엇입니까? 나만을 비추던 그 시선을 녹여, 누군가의 짐을 덜어주고 공동체를 정결케 하는 물두멍으로 내어놓을 때, 우리의 투박한 일상은 비로소 성막의 일부가 됩니다. 그 물두멍 앞에서 제사장들이 손을 씻을 때마다, 여인들의 헌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나를 잊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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