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를 향하여 (출 35)
지성소를 향하여
"엿새 동안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렛날은 당신들에게 거룩한 날입니다." (출 35:2)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다시 받아 내려온 모세가 백성들에게 선포한 첫 마디는 제4계명, 곧 안식일이었다. 성막 건축 규정도, 제사장 의복도, 정결법도 아니었다. 모세는 십계명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십계명을 성막에 비유하면, 안식일은 지성소다. 뜰에는 이웃과 사물에 대한 규정이 있고, 성소에는 하나님을 향한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관계가 수렴하는 곳,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올바른 자리에서 함께 쉬는 곳, 그곳이 지성소이고, 그것이 안식일이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휘장이 있다. 에덴에 화염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아니,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인간이 스스로 휘장을 찢고 지성소에 진입하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하나님이 스스로 장벽을 허무신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청원하신 기도, "아버지 안에 내가, 내 안에 아버지가, 그리고 그들도 우리 안에"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에덴을 지키던 화염검이 거두어지는 순간이다.
안식은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이다. 안식은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놓이는 것이다. 창조 때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안식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 시작된다.
성경은 안식의 역사를 증언한다. 창세기에서 에덴이 닫히고, 출애굽기에서 지성소가 막히고, 마태복음에서 휘장이 찢어지고,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계 21:3)고 선언된다. 막힘에서 열림으로, 단절에서 임재로. 이것이 안식의 서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남아 있습니다"(히 4:9). 우리에게는 들어갈 안식이 남아 있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은 그 종말론적 안식의 예고편이다. 우리는 지금 그 안식을 향해 가는 중이다. 안식의 역사는 길고, 다양한 방식으로 관철되어 왔다. 그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