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긴 법과 하늘의 대제사장 (히브리서 8장)
히브리서 8장은 편집자가 스스로 요점을 밝히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이 계시고,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참 장막에서 섬기신다(1-2절). 이어지는 문장은 단호하다. 그분이 땅에 계셨다면 제사장이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4절). 땅에서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길 뿐이며, 모세가 장막을 세울 때 들은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본을 따라"라는 말씀이 그 근거로 인용된다(5절; 출 25:40). 편집자는 땅과 하늘, 그림자와 원형을 마주 세운다.
그 대비는 언약에서도 이어진다. 첫 번째 언약이 나무랄 데 없었다면 두 번째 언약을 위한 자리를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라고 편집자는 말한다(7절).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이 나무라시는 대상은 "그들"이다(8절). 첫 언약 역시 하나님이 그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에 맺어졌다(9절).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자리에 서면 거기에는 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돌에 새겨진 계명이 인간의 계명 준수에 달려 있다면 그것은 실패로 끝난다. 나는 첫 언약의 흠을 말하고 싶지 않다. 첫 언약의 흠이라는 표현은 율법 자체를 탓하는 말이라기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율법의 본래 흐름으로 방향이 돌아서야 한다는 강조로 읽자.
사람에게는 첫 언약과 새 언약이 있지만, 하나님 편에서 언약이 첫째와 둘째로 나뉘는 일은 무의미할 것이다. 차라리 언약의 유지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그 흐름이 얼마나 전일적이고 과격하게 유지되는지를 성서는 곳곳에서 옛 계약의 파기와 새 계약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성서에는 이것과 저것을 함께 강조하는 말들이 공존한다. 인간의 언어로 하늘의 것을 말하고 그 위에 저마다의 강조점이 섞이면 표현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편집자는 예수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규정하면서 예레미야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옛 언약 앞에는 새 언약을, 돌에 새긴 법 앞에는 마음에 새긴 법을, 땅의 제사장 앞에는 하늘의 제사장을 세운다. 대비의 말은 상황마다 달라도 그 말들이 겨누는 최종 대상은 하나다.
그 최종 대상을 한마디 이름으로 붙들기는 쉽지 않다. 편집자도 그랬는지 자기 논증을 멈추고 예레미야 31:31-34을 길게 옮겨 놓는다(8-12절). 신약성경의 구약 인용 가운데 가장 긴 대목으로 꼽히는 이 인용은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편집자의 몸짓처럼 보인다. "내가 내 율법들을 그들의 생각 속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것들을 새겨 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에게 백성이 될 것이다"(10절). 나 역시 같은 길을 택한다. 창조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토브(창 1장)와 창조의 쉼에 뿌리를 둔 제4계명의 안식(출 20:8-11), 그리고 주기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는 같은 것을 목적한다.
마음에 새긴 계명은 돌에 새긴 계명을 무효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 때의 하나님의 마음과 돌판에 새긴 율법이 처음부터 품었던 목적을 일깨운다. 대제사장은 하늘에 앉아 계시고, 법은 땅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진다(10절). 편집자가 땅과 하늘을 갈라 말하는 것도 그 하나의 흐름을 사람의 언어로 드러내려는 대비로 들린다. 히브리서 8장은 구약과 신약의 두 줄기 빛을 하늘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