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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노릇하는 자의 굴레와 겪어낸 분의 앎 (히브리서 2장)

핵심 요약 : 히브리서 2장은 1장의 높은 하늘에서 지상의 가장 낮은 자리로 곧장 내려선다.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이라는 당대의 견고한 위계 질서 안에서, 저자는 가장 높은 보좌에 계시던 아들을 천사보다 잠시 못해진 인간의 자리로 이끈다. 히브리서 2장은 1장의 높은 하늘에서 지상의 가장 낮은 자리로 곧장 내려선다.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이라는 당대의 견고한 위계 질서 안에서, 저자는 가장 높은 보좌에 계시던 아들을 천사보다 잠시 못해진 인간의 자리로 이끈다. 1장의 웅장한 찬가 내내 단 한 번도 부르지 않던 역사적 이름 '예수'(히 2:9)는 가장 영광스러운 대관식이 아니라 죽음의 고난을 맛보아야 하는 비천한 자리에서 비로소 호명된다. 하늘의 질서를 부수지 않고 그 상식의 낙차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아들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 고백은, 신약성서가 보여주는 가장 서늘한 성육신 (Incarnation)의 초상이다. 영혼과 물질을 엄격히 가르고 물질을 폄하하던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 거룩한 신성이 피와 살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은 피해야 할 오염이자 감당하기 힘든 수치였다. 그러나 저자는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자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선언하며, 예수가 사람들을 형제자매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히 2:11)고 쓴다. 그분은 고결한 거리를 유지하며 시혜를 베풀지 않는다. 물질의 수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살갗을 입으신 분은 신성을 보존하기 위한 어떤 도피처도 남겨두지 않은 채 피조물의 세계 속으로 온전히 섞여 들어간다. 예수가 취하신 피와 살은 관념적인 질료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가 마주한 인간의 적나라한 현실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히 2:15)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깊이 각인된 사슬이며, 아무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실존의 밑바닥이다. 예수가 껴안은 형제자매는 의롭거나 당당한 존재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

보좌에 던진 공과 뼈에 새긴 오늘 (히브리서 1장)

핵심 요약 : 히브리서 1장은 비명이나 탄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유대 사회의 혈통과 성전 제의라는 견고한 성벽 밖으로 밀려나 박해와 상실의 벼랑 끝에 선 신자들 앞에서 저자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엄격하고 서늘한 문장으로 아들의 초상을 세워 올린다. 히브리서 1장은 비명이나 탄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유대 사회의 혈통과 성전 제의라는 견고한 성벽 밖으로 밀려나 박해와 상실의 벼랑 끝에 선 신자들 앞에서 저자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엄격하고 서늘한 문장으로 아들의 초상을 세워 올린다. 옛 선지자들의 이름을 단 하나도 거명하지 않고, '예수'라는 지상의 이름조차 1장 끝까지 아껴둔 채, 만물을 말씀으로 지탱하고 죄를 정결하게 하신 아들의 승귀 (Exaltation)를 곧장 선언한다(히 1:3). 삶의 터전이 허물어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이들에게 던져진 첫마디는 값싼 위로나 감정적 하소연이 아니라, 천사보다 높고 위대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신 아들의 초연한 위엄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회중에게 저자는 다시 예수의 이름을 내민다. 예수로 말미암아 초래된 고난의 사태를 오직 예수의 존재로써 돌파하려는 이 시도는 얼핏 이열치열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체념이나 독기 어린 오기가 아니다. 저자의 붓끝에는 소리쳐 울부짖거나 광분하지 않는 차분한 결기가 서려 있다. 예수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라면 그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분도 오직 예수뿐이라는 서늘한 역설이다. 고난의 현장에 남겨진 신자들은 보좌를 향해 가장 날카로운 탄원의 공을 던진다. 이 화려한 찬가는 사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가장 대담한 고발장 이다. 하지만 고발장을 받아 든 아들은 하늘 높은 곳에 이미 앉아 계신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원수들이 그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거기 앉아 있으라고 명하신다(히 1:13, 시 110:1). 승리자는 이미 보좌에 좌정하여 평온을 누리는데, 땅 위의 신자들은 여전히 짓밟히고 피를 흘리는 모순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