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휘장과 영원한 제사장의 이름 (히브리서 7장)
히브리서 7장은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바쳤던 살렘 왕 멜기세덱의 이름을 풀이하며 문을 연다(1-2절; 창 14:18-20). 그의 이름은 첫째로 정의의 임금이고 다음으로는 평화의 임금이다. 편집자는 수신자들에게 익숙한 옛 제사의 질서 속에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과 레위의 서열을 차례로 짚어내며(4-10절), 마침내 멜기세덱의 자리에 예수를 세운다. 흥미롭게도 3절은 예수가 멜기세덱을 닮았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부모도 족보도 생애의 시작과 끝도 기록되지 않은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꼭 닮은 분"이라고 거꾸로 진술한다. 편집자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를 설명하기 위해 구약의 멜기세덱을 소환한 셈이다. 실체이자 원본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그림자로 불려 나온 멜기세덱조차도 자기가 가리키던 예수로부터 비로소 참된 희망을 보게 된다.
예수가 멜기세덱의 자리에 서셨다는 것은 곧 정의의 임금과 평화의 임금이라는 그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으셨다는 뜻이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이 두 이름은 곧장 19절의 더 나은 희망을 가리킨다. 물론 레위 계통의 옛 제사법 역시 하나님 앞에서 의와 평화를 얻고자 마련된 제도였다. 그러나 그 제사는 육신의 혈통이라는 조건과 제사장의 죽음이라는 시간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16, 23절).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의 나 자신이 율법만으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는 옛 계명의 무력함과 무익함을 몸소 증빙한다(18-19절). 제사장을 세우는 방식이 바뀌면 율법도 바뀔 수밖에 없기에(12절), 편집자는 율법의 논리를 따라 시간과 죽음의 유한성을 넘어선 새로운 법이 주어졌음을 선포한다.
옛 법이 폐기되고 더 나은 희망이 들어선 이 구원의 상태를 성서의 저자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증언한다. 사도 바울이 이를 두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성령의 법,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라는 신분으로 불렀다면(롬 8:2, 14-17; 갈 4:7), 히브리서 7장의 편집자는 제사장의 언어를 빌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존재라고 부른다(19, 25절). 유대인에게 제사란 본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행위였다. 하지만 옛 법의 제사에는 처음부터 넘어설 수 없는 원천적 한계가 그어져 있었다. 백성은 물론이고 레위 제사장들 앞에도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두꺼운 휘장이 버티고 서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엄격히 가로막았다(출 26:33; 히 9:2-3).
성소와 지성소의 분리에 익숙했던 복음서 편집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던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고 기록했다(마 27:51; 막 15:38; 눅 23:45). 복음서가 휘장의 찢어짐이라는 공간적 경계의 철폐로 기록한 그 사건을, 히브리서 편집자는 무력한 옛 제사법의 폐기와 하늘로부터 세움 받은 영원한 대제사장의 등장으로 읽어낸다.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이 아니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서신 대제사장(16절)이 자기를 단번에 드리심으로써(27절), 원천적 한계로 닫혀 있던 지성소의 문턱은 영원히 허물어졌다. 현실의 무력함을 날마다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신자가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은, 정의와 평화라는 이름을 지니신 영원한 제사장이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희망이 되시기 때문이다(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