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양심과 체휼하시는 대제사장 (히브리서 4장)

핵심 요약: 히브리서 4장은 안식의 약속이 유효하게 남아 있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면서도, 뜻밖에도 신자들을 향해 "두려워하라"고 명령한다(1절). 광야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문턱에서 불순종으로 엎드러졌고, 저자는 그 실패의 역사를 먼 과거의 박제된 기억으로 두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으로 끌어온다(6-7절).

히브리서 4장은 안식의 약속이 유효하게 남아 있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면서도, 뜻밖에도 신자들을 향해 "두려워하라"고 명령한다(1절). 광야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문턱에서 불순종으로 엎드러졌고, 저자는 그 실패의 역사를 먼 과거의 박제된 기억으로 두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으로 끌어온다(6-7절). 10절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가 자기의 일을 쉰다고 선포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11절은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촉구한다. 쉼의 약속과 힘씀의 권면이 맞부딪히는 이 긴장은, 신앙의 여정이 결코 안일한 관람석에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쉼과 노력의 틈바구니에 좌우에 날선 검을 불쑥 들이민다(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가차 없이 발가벗긴다. 결산을 받으실 하나님의 눈앞에서 피조물은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 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13절). 이것은 스스로 세운 도덕적 공로나 얄팍한 양심으로 안식을 쟁취하려던 인간을 향한 파산선고다. 인간의 양심은 스스로 안식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말씀의 칼날 앞에 선 인간은 자신의 털 난 양심과 밑천을 더는 숨길 수 없다.

그러나 말씀의 칼이 인간의 밑바닥을 가르고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서 저자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큰 대제사장 예수를 호명한다(14-15절). 그분은 하늘의 보좌에만 머물지 않고 로마서가 증언하는 피조물의 탄식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와, 온갖 한계와 결핍 속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과 유혹을 겪어내셨다. 예수가 "죄는 없으시다"는 선언은 넘어진 자들을 정죄하는 서늘한 잣대가 아니라, 연약함의 수렁에 빠진 인간을 건져 올리는 밧줄이 된다. 참된 쉼의 근거는 인간의 자질이 아니라 그분의 신실하심에 닿아 있다.

여기서 교의학의 거대한 체계마다 윤리를 떼어놓지 않고 이어 붙였던 칼 바르트의 통찰이 겹쳐진다. 바르트에게 윤리는 율법주의적 강박 대신 전적 타자의 은혜를 입은 피조물이 돌려드리는 감사의 윤리였다. 사랑하는 대상을 마주한 사람이 쏟아붓는 수고가 억지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이 되듯, 히브리서 편집자가 쥐고 있는 권면 또한 은혜에 빚진 자의 자연스러운 윤리다. 구멍 난 양심을 지닌 자는 자기 의로 안식을 사려 들지 않는다. 히브리서 3장의 고백처럼 커피 한 잔을 건네고 하찮은 일상 속에서 예수를 가만히 깊이 생각하는 작은 언행이야말로 파산한 자가 은혜에 화답하는 소박하고 진실한 감사의 숨결이 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의 걸음은 1절의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16절의 담대함으로 가닿는다. 말씀의 칼날 앞에 자신의 무능을 정직하게 자인한 사람은 더는 숨을 곳을 찾아 헤매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의 담대함은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억지 확신 대신 연약함을 친히 앓아내신 대제사장의 긍휼을 붙드는 가난한 신뢰다. 광야의 거친 숨결과 말씀의 칼날이 여전히 인간의 밑바닥을 흔들지라도, 신자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쉼이 되신 예수를 바라보며 구멍 난 양심의 감사로 안식의 하루를, 그리고 매일의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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