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텍스트북과 스스로 약이 되신 예수 (히브리서 3장)

핵심 요약: 히브리서 3장은 성령의 거친 목소리로 광야 한복판을 소환한다(7-8절).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는 므리바와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며 마음을 닫아걸었다. 저자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도 옛 기억으로 치부하지 않고 성령이 '오늘' 말씀하신다고 현재형으로 쓴다.

히브리서 3장은 성령의 거친 목소리로 광야 한복판을 소환한다(7-8절).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는 므리바와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며 마음을 닫아걸었다. 저자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도 옛 기억으로 치부하지 않고 성령이 '오늘' 말씀하신다고 현재형으로 쓴다. 신앙의 길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하나님이 말을 걸어오실 때 그 음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둔감함이며, 메마른 결핍 앞에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완고함이다. 광야는 저 먼 고대의 지명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도 귀를 닫아버리는 인간 실존의 벌판이다.

히브리서 편집자(저자)가 이 질병 앞에 내미는 처방전은 내면의 도덕적 수양이 아니다. 그는 시선을 저 바깥으로 돌려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1절)를 깊이 생각하라 명하며, 동시에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13절)고 곁의 형제들을 향해 등을 떠민다. 밖에서 오신 예수를 응시하는 일과 매일 곁의 지체를 붙드는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린다. 그것은 거창한 종교적 결의나 비장한 수도 생활이 아니라,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자연스럽고 하찮은 일상이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양들이 굶주린 이에게 빵을 건네면서도 자신이 무슨 거룩한 일을 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처럼 커피 한 잔을 건네고 안부를 묻는 일상의 작은 몸짓 속에서 말씀은 비로소 숨을 쉰다.

그러나 일상은 결코 안온한 평원만이 아니다. 배교는 거창한 박해의 칼날 앞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하찮은 하루의 피로와 결핍 그리고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 속에서 인간은 너무도 쉽게 하나님에게서 돌아선다. 아담의 후예로서 피조물이 겪는 나약함은 어쩌면 숙명에 가깝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에서 성화를 밟아야 하는 나약한 신부의 발밑을 향해 예수가 "밟아라, 내가 밟히기 위해 왔다"고 속삭였듯, 신앙의 허들은 인간이 제 힘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저자는 17절에서 광야에 엎드러진 시체들을 거명하며 결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매섭게 몰아붙인다. 교통법규가 신호 위반을 용인할 수 없듯 성서라는 텍스트북은 결코 타협 없는 규범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의 탈선을 막아서는 억제책으로서의 법(제1용법)을 넘어, 성서의 텍스트북은 인간의 밑바닥을 가차 없이 비추는 서늘한 거울이 된다.

여기서 루터가 꿰뚫어 보았던 율법의 신학적 용법(제2용법), 곧 '병 주고 약 주는 예수'의 거룩한 역설이 드러난다. 텍스트북의 서슬 퍼런 요구는 인간을 질책하여 멸망시키려는 악의가 아니다. 율법의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귀먹음과 완고함이 죽음에 이르는 질병임을 깨닫는다. 말씀은 우리를 파산선고로 몰아넣음으로써 스스로 중환자임을 알게 하는 '병'을 안긴다. 그리고 바로 그 파산의 자리에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허들을 친히 뛰어넘어 상처 입은 발로 걸어오신 분이 계신다. 저자가 깊이 생각하라고 명한 사도이자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자질을 요구하며 방관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스스로 우리의 치료약이 되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분이다.

그러므로 광야를 걷는 신앙은 완성된 자질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다. 법의 서슬 퍼런 정죄 앞에서 날마다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면서도, 그 허들을 넘어 찾아오신 예수의 상처를 바라보는 일이다. 여기서 율법은 비로소 인간을 짓누르는 공포의 채찍을 벗고, 은혜 입은 자들이 광야를 함께 걸어가도록 이끄는 삶의 나침반(제3용법)으로 변모한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는 명령은 홀로 거룩해지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넘어진 형제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일상의 씨름으로 남는다. 안식의 약속은 주어졌으나 광야의 모래바람은 여전히 거칠고, 엎드러진 시체들의 경고는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다. 신자들은 그 두려움과 은혜의 틈바구니에서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하찮은 안부를 나누며 스스로 약이 되신 예수를 묵묵히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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