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장: 신비 앞의 노출, 인간 한계의 심연을 비추다

출애굽기 8장: 신비 앞의 노출, 인간 한계의 심연을 비추다

바로가 대답하였다. "내일이다." 모세가 말하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 우리의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드리겠습니다. ... 마술사들이 바로에게 그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고집을 부리고,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출애굽기 8:10, 19, 32, 새번역)

전능하신 창조주가 고작 개구리와 이, 파리 떼를 동원하여 인간과 싸우는 장면은 어딘가 어색합니다. 기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드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이자 한계의 노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유치한 방법으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능이 아니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의 눈높이까지 내려오신 하나님의 자기 비하(Kenosis)의 흔적입니다. 하나님은 고고한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언어인 재앙을 사용하여 대화를 시도하시는 슬픈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집트의 마술사들입니다. 일반인보다 영적인 민감성을 갖춘 그들은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 불가항력적 임재 앞에서 "이것은 신의 권능(손가락)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멈춰 섭니다. 귀신이 예수를 먼저 알아보듯, 그들은 피조물의 한계를 직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멈추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완악함은 단순히 개인의 나쁜 성품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제국의 시스템을 수호해야 하는 최고 통치자입니다. 노예 노동력의 상실은 곧 국가 경제와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기에,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지도자로서 그는 합리적이고도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만든 견고한 이익의 시스템에 갇혀 명백한 신의 손가락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성서를 읽을 때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파라오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이 대결을 관조하면, 파라오에게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신이 되려 하고, 내가 구축한 삶의 시스템과 손에 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모습, 그것은 바로 인간 실존의 민낯입니다. 열 가지 재앙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님 됨'과 '인간 됨'의 치열한 씨름입니다. 파라오가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바꾸며 추격과 후회를 반복하는 모습은 인간 의지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죄와 한계가 깊어질수록 그것을 뚫고 들어오려는 하나님의 집요한 은혜 또한 선명해집니다.

결국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주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드리겠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 신을 연구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지위, 교양, 그리고 내가 의지하던 시스템이라는 갑옷이 벗겨진 채 압도적인 신비 앞에 내가 노출되는 사건입니다. 마술사들은 그 신비 앞에 항복했으나, 파라오는 끝내 자신을 노출하지 않으려다 부러졌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의 빛 아래 벌거벗은 채 서는 훈련장입니다. 신앙은 내가 쥐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를 온전히 내어맡기는 두렵지만 자유로운 노출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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