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자식이 되어봅시다 (눅 3:7-18)

오늘 설교자는 누가복음 3:7-18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자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우리네 사상 가운데 하나인 개벽에 빗대었다. 개벽은 열림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우주적 차원의 새로운 시작(시대)를 의미하는데, 본문의 세례가 그런 소망을 담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요즘은 대림 절기인데 예수를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개벽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선포하며 두 가지를 촉구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기득권을 버리라, 다른 하나는 긴박한 심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라. 누가는 세례 요한의 선포에 반응한 세 부류를 소개한다. 첫째는 부자(10f.), 둘째는 세리(12f.), 그리고 셋째는 군인(14f.)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가 있었다: 독사의 자식. 우리네에게 친숙한 말로는 x새끼인데,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라가 아닌,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강조하는 투철한 신앙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라는 거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설교 제목을 다시 던지며 생각해보자고 했다. 설교자는 더 이상의 말을 아꼈지만, 독사의 자식에 나 자신을 집어넣어보자는 거다. 

설교자가 본격적으로 설교하기 전, 잠깐 시간이 나는데 그때마다 나는 설교 본문을 갖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배 시작 전과 중간에 "빈자리 있습니다" 찬양을 불렀는데, 작가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톨스토이가 생각났다. 예수님의 방문을 기다리는 사람 이야기 말이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의자를 정성껏 준비했는데, 정작 거기에 앉은 이는 그 의자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앉히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예수님은 내가 앉았다고 하시며 고마웠다고 말씀한다. 작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야기로 풀어낸 거다. 성서에는 사람의 앙큼한 지혜(?)도 고발한다. "고르반"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성육신/강림/대림)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뭐 사람? 나도 사람인데 하고 자기가 앉는 작태, 숭고한 고르반을 척결해버리는 행태를 성서는 이미 안다. 예수를 대림 하는 절박한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버리는 것은 사하심이 없다는 성령 훼방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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