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7장: 변수를 삼키는 상수, 기적의 참된 표징

출애굽기 7장: 변수를 삼키는 상수, 기적의 참된 표징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 ...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그런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출애굽기 7:9, 13, 22, 새번역)

고대 사회에서 신의 존재는 기적으로 가늠되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은 신의 몫으로 여겨졌고, 그것이 곧 신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7장은 이 도식에 균열을 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 그리고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을 이집트의 술사들도 똑같이 흉내 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뱀이 되고 물이 피가 되는 것은 21세기 과학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당시 술사들은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만약 기적의 기준이 단순히 인간의 불가능성이나 초자연적 현상에 있다면, 이 대결에서 하나님의 유일성은 증명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보지 못하는 장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를 '기적'이라 부르며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존재를 기적의 유무에 맡기면, 하나님을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On/Off) 하는 0.1%도 모르는 소치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우리가 듣지 못하는 지구의 자전 소리처럼, 우리의 인지 영역 너머에 항상 계시는 '상수(Constant)'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가 기적 쇼(Show)에 따라 점멸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도 흉내 낼 수 있는 지팡이와 피의 카드를 먼저 꺼내 드셨을까요? 성서는 이 사건이 단순한 물리적 대결(Fact)이 아니라 신학적 의미를 담은 표징임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변화가 아니라 삼킴에 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12절)."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법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자랑하는 최고의 권위(뱀)와 기술(술법)을 당신의 질서 안으로 집어삼켜 무력화시키는 장면입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재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술사들은 피를 다시 맑은 물로 되돌리는 치유의 능력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멀쩡한 물을 피로 만드는 파괴를 흉내 냈을 뿐입니다. 악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심판을 가중시키는 무능력한 존재임을 저자는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이 죽음으로 변하자 하나님을 찾거나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구하는 대신 강가 주변의 땅을 파서 물을 구했습니다. 하늘(상수)이 닫혔음에도 땅(변수)을 파헤쳐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는 인간의 끈질긴 고집과 어리석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에서 그 뱀이 술사들의 뱀들을 삼킨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드러나는 의미는 왜 하나님이 이 이적을 본격적인 재앙 이전에 실행하도록 하셨는지, 저자가 첫 번째 피의 재앙 이전에 이것을 배치했는가를 주목하게 합니다. 이 모든 기록은 실사(Fact)를 넘어선 의미사(Truth)입니다. 기적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마술이 아닙니다. 기적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상수가 요동치는 인간 역사의 변수에 개입하여 거짓된 권위를 삼키고 참된 질서를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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