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한계선에서 희망을 묻다 (아모스 7장)
긍휼의 한계선에서 희망을 묻다
아모스 7장 묵상
2 ... 주 하나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나 약합니다." 3 주님께서 이것을 보시고서, 뜻을 돌이키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5 ... 주 하나님, 그만두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나 약합니다." 6 주님께서 이것을 보시고서, 뜻을 돌이키셨다.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8 ...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다림줄을 하나 세우겠다.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1. 심판을 멈춰 세운 기도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가운데 한 줄기 빛이 가늘게 비칩니다. 메뚜기 떼가 땅의 풀을 다 먹어 치우려는 찰나, 온 땅을 삼킬 듯한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 선지자 아모스는 절규하듯 부르짖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나 약합니다." 이 연약한 피조물을 향한 애끓는 중보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 번이나 돌이켜 세운 이 장면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며, 당신의 백성의 간구를 들으시는 인격적인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용서의 가능성입니다. 심판의 하나님 안에서 용서와 구원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엿보게 하는 희망의 서곡입니다.
2. 물러서지 않는 다림줄
그러나 희망의 서곡은 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 환상으로 다림줄을 보여주십니다. 수직을 재는 절대 기준인 다림줄을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시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두 번의 긍휼 끝에 찾아온 이 단호한 선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림줄은 더 이상 타협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 그분의 거룩한 기준을 상징합니다. 처음 두 번의 심판 유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작동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학의 가장 깊은 난제와 마주합니다. 결코 포기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그분의 '절대 공의'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3. 십자가 위의 심판자
이 위대한 역설, 이 거룩한 모순을 해결하는 길이 있습니까? 인류의 지성은 "심판자가 심판받음"이라는 신비 앞에서 그 답을 발견했습니다. 20세기 신학자 칼 바르트가 탁월하게 조명했듯, 이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하나님의 공의는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다림줄의 심판)
-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무한해서 죄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의 용서)
그리하여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다림줄의 준엄한 심판을 자신의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Nein)와 자비로운 용서(Ja)가 하나의 사건으로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 심오한 통찰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통합되나 섞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고백했던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대립물의 일치'를 사유했던 쿠자누스와 같은 사상가들의 지혜를 거쳐 우리에게 온 복음의 정수입니다. 심판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심판자께서 그 심판을 대신 짊어지심으로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완성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다양하심을 주목하기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신학적 답변 앞에서 모든 질문을 멈춰야 할까요? 현대 신학자 미하엘 벨커의 제안처럼, 어쩌면 우리는 단일한 원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성서가 들려주는 '다성악적(Polyphonic)'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모릅니다. 아모스 7장 자체가 바로 그런 다성음악입니다. 그 안에는 야곱의 연약함을 부르짖는 '중보의 선율', 심판을 돌이키시는 '긍휼의 화음', 그리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공의의 저음'이 함께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중 하나의 소리만 선택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협화음처럼 들리는 이 모든 소리의 긴장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인간은 유한하여 이 모든 소리를 하나의 교향곡으로 지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한하신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침묵, 우리의 절망과 하나님의 희망, 심판의 경고와 구원의 약속이라는 모든 선율을 당신의 장엄한 구원 역사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화음으로 엮어내시는 궁극의 지휘자이십니다. 우리의 과제는 그 지휘봉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