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6장: 입이 둔한 자를 덮치는 하나님의 이름

출애굽기 6장: 입이 둔한 자를 덮치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주다. 너는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모두 이집트의 임금 바로에게 전하여라'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주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바로가 어찌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출애굽기 6:2, 29-30, 새번역)

하나님은 모세의 볼멘 기도에 응답하여 당신의 이름을 다시금 천명하십니다. "나는 주(여호와)다!" 이는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족장들에게는 '전능한 하나님'으로만 알려졌던 그분이, 이제는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는 신실한 여호와로서 모세의 등 뒤를 받치겠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계시 앞에서도 모세는 주저앉습니다.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모세는 이 장에서 두 번이나 뒷걸음질 칩니다.

모세의 이 거절은 얄팍한 겸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참한 실패(5장)를 겪은 자의 진솔한 자기 존재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했으나 결과는 노역의 가중이었고, 동족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하물며 파라오가 듣겠습니까?"라는 모세의 반문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인정하며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겠습니다"라는 말보다 "나는 못 갑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패배자의 심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4장에서 핑계를 대는 모세에게 진노하셨던 하나님이, 6장에서는 침묵하십니다. 아무런 질책도 경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입에서 나온 거절의 말보다 그 말이 튀어나온 상처 입은 심장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다"라고 거듭 말씀하시며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로 여러 차례 모세를 설득하고 기다려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겸비(Condescension)입니다.

모세가 고백한 "입이 둔하다"는 말은 원어로 '할례받지 못한 입술(uncircumcised lips)'을 뜻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가 덮여 있고 막혀 있어 거룩한 말씀을 담아내기에 부적합하다는 영적 절망의 표현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이 부정함을 깨닫고 숯불로 입술을 지지는 정화(Purification) 예식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숯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둔한 입을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달변가로 개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의 할례받지 못한 입술을 있는 그대로 두시고, 당신의 말씀을 그 위에 덮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라는 그릇을 수리해서 완벽하게 만든 뒤에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진 틈 사이로 당신의 말씀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모세의 입이 뚫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의 막힌 입을 뚫고 나갑니다. 바로를 굴복시키는 것은 모세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서 운동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방해물이 아닙니다. "나는 입이 둔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우리의 처절한 고백은 역설적으로 내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날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서막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쳐서 쓰시기보다 당신의 압도적인 이름으로 우리의 둔함을 덮어쓰시며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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