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들의 침묵 (아모스 6장)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들의 침묵
아모스 6장 묵상
3 너희는 재난이 닥쳐올 날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너희가 하는 일은, 오히려 폭력의 날을 가까이 불러들이고 있다. 10 시체들을 불살라 장례를 치르는 친척이 와서, 그 집에서 시체들을 내가면서, 집 안에 있는 사람에게, 옆에 아직 시체가 더 있느냐고 물으면, 남아 있는 그 사람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 친척이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12 말들이 바위 위에서 달릴 수 있느냐? 사람이 소를 부려 바다를 갈 수 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공의를 뒤엎어 독약을 만들고, 정의에서 거둔 열매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었다.
1. 성대한 예배, 공허한 삶
북이스라엘은 풍요의 절정에서 하나님께 성대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전은 제물의 연기로 자욱했고, 찬양 소리는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종교적 열심이 닥쳐올 재난을 막아줄 방패라고 굳게 믿었습니다(3절).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는 그들의 믿음이 치명적인 착각임을 폭로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 곧 그들의 삶 자체가 폭력의 날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 형식보다 내용을, 제단의 제물보다 삶의 열매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는 거룩한 백성이었지만, 성문 밖 시장과 법정에서는 공의를 뒤엎어 독약을 만들고, 정의의 열매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12절). 삶이 분리된 예배, 정의가 실종된 찬양은 하나님 앞에 위선적인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대하게 예배하고 철저하게 망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2. 관계의 파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공포
심판의 참상은 10절의 짧은 묘사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 정상적인 매장이 불가능해 시신을 불태워야 하는 상황, 한 집안의 마지막 생존자를 확인하는 절망적인 대화. 그러나 이 모든 비극을 압도하는 가장 끔찍한 장면은 마지막 한마디에 있습니다. "조용히 하라.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한때 구원과 희망의 근원이었던 야훼의 이름이 이제는 공포와 진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주종 관계를 넘어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합니다. 그 이름이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의 원인임을 알기에, 혹여 남은 목숨마저 앗아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파괴를 넘어선 영혼의 파괴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입니다. 에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피해 숨어버린 아담처럼 그들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창조주의 이름을 부를 자격조차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3. 심판의 뿌리,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남은 자'
모든 파국의 원인은 명확합니다. "공의를 뒤엎어 독약을 만들고, 정의에서 거둔 열매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든 것"(12절).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이 위선적인 예배자들과 동일시하셨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남은 자'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혹시 성전의 화려함 뒤편,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없었을까요? "의식적인 예배는 성대하게 드리지만 삶에 정의와 공의가 없는 사람"과 "정의와 공의를 삶으로 실천하지만, 의식적인 예배 행위는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하나님께 가까운가? 아모스의 외침에 비추어 볼 때, 답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는 종교적 명망가가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7천 명처럼 그들은 세상의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진정한 예배자들입니다.
4. 삶이라는 제단: 당신의 예배는 어디에 있는가?
이 깨달음은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우리의 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예배가 제사 의식과 순서에 있지 않다면, 진정한 예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예배와 기도처, 제단을 갖고 있습니다.
상인이 정직한 저울을 사용하는 상점 카운터가 그의 예배당입니다. 판사가 가난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법정이 그의 성소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식탁이 그의 제단입니다. 한 시민이 사회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광장이 그의 기도처입니다.
아모스의 경고는 2,7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예배는 주일 아침 예배당의 의자에서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신앙고백은 삶의 현장에서 공의와 정의의 열매로 증명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화려한 신앙고백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이라는 제단 위에 올려진 정직과 사랑의 제물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