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패배, 그 최후의 기획 (아모스 4장)

하나님의 패배, 그 최후의 기획

아모스 4장

11 "나 하나님이 옛날에 소돔과 고모라를 뒤엎은 것처럼, 너희의 성읍들을 뒤엎었다. 그 때에 너희는 불 속에서 끄집어낸 나뭇조각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다시 그렇게 하겠다. 바로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스라엘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여라."

1. 무력한 전능자, 승리하는 인간

아모스 4장은 하나님의 깊은 탄식과 인간의 완고한 저항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비극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심판의 카드를 꺼내 보이십니다. 기근, 가뭄, 병충해, 전염병,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파괴까지. 전능자의 권능이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각 재앙의 끝에 붙는 후렴구는 놀랍도록 무력합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구절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인 진실과 마주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라는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내면적 반항을 잠재우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능이라기보다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의지가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거듭되는 경고는 오히려 인간의 ‘승리’ 같은 자기파괴적 완고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2. 만남의 방식, 그 근본적 한계

왜 하나님의 열심은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것은 심판이라는 만남의 방식이 가진 근본적 한계 때문입니다. 타락 이후 인간의 본성은 외부의 압력만으로는 변화될 수 없는 깊은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악한 인간"이라는 절망적 진단은 창조의 실패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현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따라서 징계와 심판을 통한 만남은 그 자체로 구원을 이루는 방식이라기보다 이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과정입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잠시 행동을 교정할 수는 있어도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 실패의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만남이 필요함을 친히 증명하고 계십니다.

3. ‘다른 만남’을 기획하다

구약의 모든 실패는 필연적으로 다른 만남을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인간의 완고함 앞에서 마침내 하나님은 당신의 패배를 인정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위대한 최후의 기획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은 더 이상 경고하고 심판하는 만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자리로, 우리의 비참함과 반역의 한복판으로 내려오시는 만남입니다. 성육신(Incarnation)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다른 만남의 정점입니다. 이 만남에서 하나님은 심판자가 아닌 동행자가 되시고, 경고자가 아닌 대속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반역을 힘으로 누르는 대신에 그 모든 반역의 결과를 십자가에서 친히 감당하십니다. 아모스 4장의 모든 실패는 바로 이 다른 만남이 왜 유일한 희망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변증입니다.

4.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다시 들려오는 말씀

하나님의 다른 만남 기획의 빛 아래에서 "이스라엘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여라"(12절)라는 명령은 전혀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피할 수 없는 심판에 대한 최후통첩으로 들렸던 이 말씀이 이제는 우리의 모든 반항과 실패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자는 최후의 초청으로 들립니다. 이 준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거나 제물을 바쳐 심판을 면하려는 준비가 아닙니다. 나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파산의 준비이며,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다른 만남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는 항복의 준비입니다. 결국 아모스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창조주께서 의도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관계(토브)를 회복시켜 달라는 청원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기도에서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청원하는 것뿐입니다. 심판의 경고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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