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 흉터를 섭리라 부를 때, 구원의 여명

흉터를 섭리라 부를 때, 구원의 여명

창세기 45장 묵상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창세기 45:4, 7-8, 새번역)


1. 가장 먼저 말을 건넨 흉터

요셉은 "내가 요셉입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첫마디는 달랐습니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팔려 온 자'라는 고통의 역사와 연결하여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습니다.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한, 쓰라린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현재 이전에 형들이 만든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먼저 대면합니다. 이것은 원망의 언어가 아닙니다. 용서가 고통의 현실을 외면하는 값싼 망각이 아님을, 그 아픔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보여주는 가장 진솔한 고백입니다.

2. 기억의 재해석이라는 거룩한 결단

그러나 요셉은 그 흉터의 기억에 자신을 가두지 않습니다. 그는 의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기억 그릇에 담긴 과거의 의미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현실 부정이 아닙니다. 형들의 죄악이라는 '사실' 위에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더 큰 '진실'을 덮어쓰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이처럼 그의 위대한 재해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것은 총리가 된 요셉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 있는 구덩이와 감옥 속에서도 자신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압도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깊은 경험이 있었기에 형들을 향한 증오와 원망은 하나님의 선하심 아래 덮여 힘을 잃었습니다. 죄는 강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뿌리내린 용서는 더욱 강하다는 진리를 요셉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3. 요셉의 고백, 복음의 예고

요셉의 이 고백은 온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의 예고편과 같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창 5020)라는 그의 선언은 인류의 가장 큰 죄악인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구원인 '죄 사함'을 이루신 십자가의 신비와 능력을 미리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렘 3134) 약속하신 것은 그 죄의 흔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덮으시겠다는 사랑의 선택과 결단(결정)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고통을 통해 형제들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되었듯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십자가 고통을 통해 온 피조물을 살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셨습니다. 요셉을 붙드셨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경험이 창세기 45장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전승되기를 소망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지워지지 않는 흉터들도 마침내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증거하는 영광의 무늬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래서 비록 지옥 같은 가뭄이 덮고 있는 이집트 땅 위에서 기갈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요셉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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