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인간이 만든 피라미드 변종을 치유하고 해방의 해를 선포한다 (눅 4:14-21)



오늘은 그리스도교 일치주간을 기념하여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개신교 목사님이 함께 예배를 드렸고, 신부님이 누가복음 4:14-21을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강론)했다. 신부님이 개신교 주일예배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안식년을 맞이하여 가능했다. 

설교자는 본문에 근거하여 교회, 아니 세상(세계)가 처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이 임해서 가능했다고 선언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 성령 강림을 통한 교회의 시작, 특히 당신의 사역 시작을 알리는 "성령이 임했다"는 예수의 말씀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처음"을 가리킨다. 

반면 처음처럼, 첫단추 잘 끼기, 초심 유지라는 우리네 지혜의 말들은 그것이 유지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성찰이다. 반성이 쌓이고 쌓여서 인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의 구조, 조직, 사회, 국가는 피라미드화가 필연이다. 인간의 지배 욕구가 제어되지 못하면 노예화로 변질된다. 심지어 지배와 피지배 구조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변종도 나오는데, 그것은 피지배 욕구이다. 그렇다, 차라리 맞고 나면 푹 잔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인간의 지속 불가능성 때문에 피라미드화가 진행되다가 결국 악마화 되고마는 흐름은 인간 역사를 수직으로 자르든 수평으로 자르든 늘 거기에 있다.
 
피라미드화가 진행되는 사회는 명령이 지배한다. 명령 사회의 특징은 생각 실종이다. 설교자는 루터의 종교개혁도 성령의 감동으로부터 시작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현재 개신교회가 개혁의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되물었다. 물 마시듯 사람들을 죽인 이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각 실종의 극명한 작태는 여전하지 않은가.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잔치하는 곳으로 창조하여 인간을 초대했고, 그 세상을 서로를 위한 희생(거대하고 느릿느릿한 희생, 장자의 곤과 붕처럼 하도 커서 없다고 생각되는 희생)으로 유지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자신의 나라로 만든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명백하게 거부하며 세상을 피라미드로 만들고 상호 희생 체계를 병들게 만들었다. 

예수는 인간이 만든 피라미드 변종을 치유하고 해방의 해를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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