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사람의 굽은 마음을 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9장: 사람의 굽은 마음을 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3   그런데 율법학자 몇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는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편집자는 예수를 적대하는 세력을 등장시켰다. 예수가 가는 곳마다, 심지어 길 가면서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지켜보는 당시 지도층은 예수가 일으키는 상황을 보며 우려를 넘어 질투하고 두려웠다. 왜 그들은 예수가 미웠을까? 예수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까봐서다. 그들은 종교적으로는 성직 계열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지배층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재산이 많았다. 예수는 그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파고 들었다. 병고침, 귀신축출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저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할 수는 있었으나, 병이 나았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이것이 예수를 적대하는 세력의 한계요 약점이다. 사실상 그들은 그들의 권세보다 공고히 유지해낸 계급으로써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걷는 길에 종교적 덫을 놓고 기다렸다.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종교적 문제가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을 죄로 이해하는 사회, 게다가 신만이 그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죄 용서’의 선언은 스스로 덫에 발을 넣는 것과 같다. 예수는 중풍병 환자에게 죄 용서를 선언했다. 예수는 자신의 선언이 몰고올 파장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죄 용서를 입 밖으로 꺼내었다. 예수는 적대세력이 하나님만 할 수 있다고 믿는, 그리고 그들은 갖지 못한 죄 용서의 권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런 권한이 있다면, 죄 용서 선언이나 침상을 챙겨서 너의 발로 걸어가라는 명령은 동전의 양면이다. 예수는 죄 용서를 구하거나 걸어가게 해주십사 빌지 않고 명령했다. 예수는 그의 적대자들에게 자신이 지닌 동전의 양면을 다 보여줬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행위에 존재가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풍병자 치유 사건에서 예수의 신적 선언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적대하는 세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가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신적 언행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귀신의 힘으로 폄하했다. 그들은 다니엘서를 읽었지만, 야훼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훨씬 좋은 계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계급이 높으면 사람이어도 신의 아들이라고 충분히 부를 수 있지만,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며 그를 신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못한다. 그들의 철저한 계급적 사유는 하나님 조차 귀신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견고하다. 이것은 루터와 그리고 이어서 본회퍼가 말한 ‘한 쪽(자기)으로 구부러진 마음’이다. 예수는 사람의 구부러진 마음과 생각을 곧게 펴길 바란다. 세례자 요한이 이사야의 예언을 상기하며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되 곧게 하라(마태 3:3)고 선포한 것이야말로 예수의 사역을 정확히 가리킨다. 

중풍병과 귀신 들림이 죄 때문이라면, 사람의 굽은 마음은 원죄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사람의 고질병을 치유한다. 마태복음 편집자는 예수와 그의 적대자의 대립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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