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8: 심판 속의 구원
시편 98: 심판 속의 구원
9절: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주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데 환호성을 질러야 하다니! 심판과 환호는 서로 이질적이다. 양자의 만남이 부드러우려면 두 가지 외에 다른 상황을 생각할 수 없다. 한 가지는 고난 당하는 의인들은 주님의 오심과 심판에 환호할 수 있다. 주님의 오심은 불의하고 불법적으로 당하던 그들의 고난을 종식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주님의 오심이 심판이 아니어야 한다. 주님의 심판이 파괴와 단죄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니 모든 피조물도 예상하지 못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성서는 주님의 심판의 내용을 구원이라고 증거한다. 그것을 공간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고, 시간적으로는 ‘주님의 함께 하심’, 곧 임마누엘이라 명명했다. 성서는 주님이 오실 때 고난 당하던 의인만 환호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시편 전체는 주님 오심을 찬양할 대상으로 ‘오직 의인만’보다는 ‘모든 피조물’을 언급한다. 모든 피조물에는 악인도 의인도 다 포함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심판은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얻는 희망을 담고 있다. 여기서 당연히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악인과 의인의 구분, 의인으로서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사실상 피조물은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다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누구의 찬송이 더 감격적일까를 생각해볼 수 있다. 고난 당하던 의인의 찬송인가? 아니면 멸망 받아 마땅한 불의한 자들의 구원 감사 찬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