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하나님의 언약 (창 9:8-17)

무지개는 하나님이 땅(피조물)을 심판(저주)하지 않겠다고 노아와 맺은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표지다. 하나님은 무지개가 떠오를 때마다 당신의 약속을 기억한다. 하지만 노아는 제 자식을 저주하며 하나님의 무지개를 무색하게 만든다. 사람의 기억은 허무하지만, 하나님의 기억은 영원하다.


노아와 언약을 맺는 하나님

노아가 방주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땅을 밟고 서자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한 언약의 범위와 내용과 효력과 결정적인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 따위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대목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더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성경에 불 심판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하나님이 마지막 때는 불로 심판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의 도구가 물이냐 불이냐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어째서 이것이 어리석은 생각일까요? 

하나님은 언약의 주된 내용과 함께 그 범위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대상에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도 포함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노아로 대표되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피조물)입니다(9). 모든 생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땅입니다(11). 창세기의 처음에 등장하는 땅(흙)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습니까? 특히 땅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하고 나니 땀 흘려 일해도 엉겅퀴를 냅니다. 게다가 성경은 땅을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며 홍수로 다 쓸어버림을 당했던 땅, 허무함의 극치였던 땅을 절대로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을 때 땅을 언급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스토리의 앞뒤가 맞습니다. 하나님이 땅(만물)을 언약에 포함시켜 주셔야만 사자 굴에 어린아이가 손 넣어도 해함을 받지 않는 그런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통해 화해하고 사랑하며 사는 하늘나라를 노아 때부터 말씀하십니다. 

무지개 기억의 정황

노아의 무지개의 배경에는 남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망한 이후의 바빌로니아 포로 시기이거나 거기서 돌아온 뒤에 자신들이 망한 이유를 성찰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진행했던 일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다음은 노아 시대보다 훨씬 후대인 이사야 54장 시대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7-10)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내가 너를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산들이 떠나고 언덕들이 옮겨지고 천지가 개벽해도 하나님은 나와 너(이스라엘) 사이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연어가 자기 났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이스라엘이 포로기 때부터 역사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자신들의 선조 노아와 맺어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아의 무지개 기억은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함으로써 실현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땅)을 위해 십자가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은 완성됩니다. 이것이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무서울만큼 신실하신 모습입니다. 

영원한 언약과 무지개

하나님은 노아와 맺는 언약을 노아 당대와 그의 후세대뿐 아니라 영원까지 세웁니다(12). 하나님은 언약의 유효 범위를 시간의 마지막 정도가 아니라 영원까지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개가 떠오르면 너희는 내 언약을 기억하고 떠올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면서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무지개를 보겠다는 말씀은 그만큼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맹세입니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14-16)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무지개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사람은 오늘 본 무지개를 내일은 잊습니다. 사람은 무지개를 오래 기억할 수 없습니다. 보다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무지개를 못 보는 게 아니라 본성적으로 안 봅니다. 노아로 대표되는 사람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그런 존재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당신 자신이 무지개가 떠오를 때마다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노아더러 ‘너는 무지개를 보아야 한다’라는 당부라기보다 하나님이 먼저 무지개를 보실 때 노아(땅)와 세운 언약, 즉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노아 기억의 허무함

하나님의 약속을 무지개로 확인한 노아의 기억은 참으로 덧없습니다. 노아가 어느 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옷을 벗은 채 잡니다. 막내 함이 아버지가 술 취해 벌거벗고 자는 것을 보고 형들에게 알려줍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로 가서 이불을 덮어줍니다. 잠에서 깬 노아가 자기가 술 취해 잠자던 사이에 벌어진 일을 알고서는 다짜고짜 함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25)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절대로 너와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자식에게 저주를 내뱉습니다. 절대로 저주는 없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받은 노아의 입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터져 나옵니다.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다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사람의 기억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억이 덧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약속의 무지개를 보라(기억)고 하지 않고 당신께서 약속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가 잃어버렸고 무시했던 무지개를 우리 시대에 한 번 더 보여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성사(Sacramentum, 성례)

책임의 원칙 (요 20:19-31)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통해 영원하게 인식되는 인생 (마 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