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신 목자 (겔 34:11-20)

11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1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19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지 않으면 양들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잃어버린 양들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양을 찾아내는 날은 심판의 날임과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하지만 구원받은 기쁨의 풀과 물을 동료와 나누는 것은 양들의 몫이다. 
하나님은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 떠 주는 하찮은 일도 자신에게 한 일로 받으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자신 있게 기도하려면, 
우리는 연약한 이웃을 찾아내야 한다. 


에스겔 34장의 배경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대에 남북으로 나뉜 후(BC 926) 200년 쯤 뒤에 북쪽은 앗시리아에게 BC 722년에 망하고, 남쪽은 그후 약 150년 뒤인 BC 587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망합니다. 남쪽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한 번에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하기 10년 전(BC 597) 남 유다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에 1차로 많이 잡혀갑니다. 그때 에스겔도 바빌로니아로 끌려갑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이 남 유다를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에스겔이 예언활동을 한 시기는 남 유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BC 597년부터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10여 년이 지난 BC 571년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에스겔은 약 30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한 셈입니다. 에스겔 34장은 그의 활동기간 30년 가운데 마지막 10년 사이에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확언

남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간 바빌로니아에서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내가 너희의 목자가 되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전체 내용입니다. 기도할 힘마저도 없는 상태에서 남 유다 사람들이 “내가 내 양떼를 찾고 찾으리라”는 말씀을 사막에서 신기루 보듯 생각해 낸 것은 아닙니다. 에스겔이 선포한 ‘내가 너희를 찾고 찾아 너희의 목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남 유다 사람들의 가슴에 박히는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11)로 시작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5)로 끝을 맺습니다. 선포의 처음과 끝을 ‘주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로 마감하듯 단락을 구성한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남 유다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는 확약을 뜻합니다. 

본문 11절은 하나님이 흩어진 양들을 찾고 또 찾겠다고 합니다. 양이 떼로 모인다 한들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연약한 무리에서조차 내쳐지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양들을 찾아내겠다고 합니다. ‘찾고 찾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흩어진 남 유다 양떼 가운데 단 한 마리의 양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12절 이하에서는 하나님이 찾으신 양들은 흐리고 캄캄한 날에 건짐을 받습니다. 흐리고 캄캄한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무섭고 두려운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판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내신 양들에게는 그날이 심판이 아니라, 건짐을 받는 날이요 목자 곁에서 평안히 쉴 수 있는 구원의 날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이 저주가 아니라 구원임을 처음과 끝을 밀봉하듯 하나님의 확언으로 표현합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죽을 몸이 살아났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았다’, ‘꺼져가는 촛불을 꺼버리지 않았다’라고 하나님의 구원을 표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내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찾아내신 양들은 모든 것을 회복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찾아낸 양떼는 포로지에서 귀환하여 이스라엘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습니다.

에스겔 예언의 독특성

다른 예언서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셨다면, 본문 에스겔서에는 하나님이 친히 나섭니다. 본문 15절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예언이 다른 예언자들의 예언과 대동소이하지만 그럼에도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보통의 예언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복 주신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희를 징계하신다.’ 그러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에 이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예언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너희 마음속 깊은 곳에 새 영을 부어주겠다.’ ‘너희가 비록 버림받은 해골더미에 놓였을지라도, 나는 너희에게 뜨거운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릴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새 마음을 줄 것이다.’ ‘나는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줄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주어서 너희가 나의 법과 규례를 따르고 준수하게 하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 백성의 목자가 되면 성취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친히 약속하셨고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시며 처음과 끝을 봉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망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칼이나 심지어 천사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롬 8:38)라고 적으며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성취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은 잃어버린 양들에게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진 것이요, 전적인 은혜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양들이 원한다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염소 같은 양

그런데 본문 16절 말씀이 양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16a) 여기까지는 본문 11-15절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16b) 여기서 “없앤다”는 히브리어 아쉬미드(ashmid)는 ‘파괴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면 회복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니까 어떤 성경은 이 단어를 ‘돌보고’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특히 공동번역). 그러나 본문 17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찾아내는 양들 가운데는 염소 같은 양도 있습니다. 본문의 살지고 강한 양, 즉 염소 같은 양들은 제 동료들이 먹는 풀을 짓밟고 먹을 물을 흙탕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양들에게 꼴과 물을 주시지만, 살진 양과 파리한 양으로 나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살진 양이 파리한 양의 꼴까지 먹어버립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복 주셔서 살진 양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동료와 꼴을 나누지 않거나 빼앗았기에 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잃어버린 양들의 목자가 되겠다는 것은 무조건적 은혜이지만, 살진 양과 파리한 양의 문제는 양들의 영역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불행하고 불의한 사태를 공정하게 정의대로 취급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에스겔 34장을 읽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심에 한없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혹시라도 우리 동료의 꼴을 짓뭉개거나 함께 마셔야 할 물을 흙탕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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