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힘: 하나님의 함께하심 (창 39:1-6)
#송년주일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한 해를 돌아보는 지점에 우리가 섰습니다. 지난 한 해를 반추하면, 탄탄 대로를 달려온 것보다는 파도가 치듯이 요동치는 삶의 곡선이 더 많을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인생이 평탄하지는 않았다고 한 것처럼 우리의 한 해도 마냥 평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발견합시다. 우리는 흔히 요셉을 어려움과 위기에도 꿈을 이룬 성공한 사람의 모델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셉을 자신의 꿈을 실현한 인물로 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무엇으로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요셉의 꿈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
요셉은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지 몰랐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가 꾼 꿈은 밭에 곡식단을 묶어놨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에 절하는 꿈,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요셉의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중에 분명해집니다. 요셉은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와서 자기 앞에 엎드렸을 때, 그제서야 자신이 꾸었던 꿈을 기억하였다고 합니다(창 42:9). 그러므로 계속해서 꼬여만 가는 삶의 과정에서는 자기가 어릴 적에 꿨던 그 꿈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큰 어려움을 만날 때도 하나님이 한 번도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셉이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귀하게 사용하실 거야’라고 기대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 험난한 삶을 살 때 그를 지탱해준 것은, 그가 어릴 적에 꾼 꿈이 아닙니다. 요셉이 광풍이 몰아치는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요셉과 늘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옥에서 신통하게 꿈을 해몽하여 인생을 역전한 요셉으로만 본다면, 그의 삶의 진면목을 보지 못합니다. 요셉 이야기에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요셉의 일상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뭔가 특별하게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요셉 곁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2절과 3절 그리고 21절과 23절에 나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붙들려 구덩이에 던져 질 때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가는 그 고통스러운 여행길에도 하나님은 그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이 노예시장에서 자신을 사갈 사람을 기다리는 그 불안한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힘든 종살이를 할 때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 할 때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의 삶이 점점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라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귀하게 대접받던 아들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로, 그런 후 노예에서 앞날을 전혀 알 수 없는 죄수로 신분이 곤두박질치며 그의 인생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던 마음을 바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 때, 형들은 요셉의 삶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낼 때 그는 더욱 깊은 곳으로 추락했습니다. 감옥에서 높은 관리의 꿈을 해석해주고 자기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관리가 복직되고도 요셉을 잊어버려 만 2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요셉의 마지막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으로 사는가?
요셉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처절하게 배신을 당했고, 가족들과 단절되었고,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가 되었고, 모함을 받아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혀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는데, 요셉은 과연 무슨 힘으로 살았던 것일까?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0-2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인자를 더 하셨습니다. 인자라는 말은 친절함, 자비, 한결같은 사랑을 의합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한결같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삶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것으로 삽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 8:38-39). 요셉이 밑바닥으로 던져질수록 하나님은 그와 더 가까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하다가, 그가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는 감옥에까지 떨어지자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창 39:21). 요셉이 왕의 죄수가 갇히는 감옥, 절대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감옥에까지 던져질지라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고, 인자함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인자로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겨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삶의 험난한 길을 걸어갈 때도, 당신 자녀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요셉의 삶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요셉 이야기는 욕망 실현을 꿈꾸게 하지 않는다.
요셉 이야기에서 그가 꿈을 잘 꾸고, 그 꿈을 잘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이루었다는 것만 보면, 그것은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요셉 이야기는 꿈쟁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인생 역전한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서점의 자기계발 코너에 가면 보다 감동적이고 멋진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많습니다. 요셉의 삶에서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본문 3절은,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라고 합니다. 즉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보디발도 요셉에게서 하나님을 보는데, 우리 눈은 왜이리 어두운지 모르겠습니다. 요셉의 꿈과 나의 꿈을 겹치거나 섞지 맙시다.
하나님은 절대 자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파란만장한 삶이었지만 거기에서 인간 승리를 한 요셉의 모습에다 당신의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삶에서 당신이 드러나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높아졌다가도 떨어지고, 낮아졌다가도 다시 회복되기도 하며, 어디에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자랑하고 싶어도 그게 하도 보잘것 없어서 실망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어떤 길이든 함께하시되 신실하게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훗날 우리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꿈과 비전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소박한 인생길에 하나님이 함께하셨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요셉에게 주신 복이고, 요셉 이야기를 읽는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짧은 글에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이나 꿈, 비전,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심하게 베푸시는 사랑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쩌면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다”는 구절에서 무릎을 탁하고 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꿈보다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더욱 소중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실현된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셨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의 꿈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 곧 인자하심이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인자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이 더욱 소중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