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6 : 성서를 꿀송이보다 달다고 말할 수 있는 자
5-7절: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어찌 그리 값집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다윗은 시편 36편에서 악인을 언급한다. 그런 다음 그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언급하고 찬양한다. 우리가 다윗의 시편을 읽을 때, 그의 찬송 가사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다. 그러나 다윗의 찬송 가사들은 그 뒷배경이 중요하다. 다윗은 악함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차례로 쓰고 있지만, 우리가 다윗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그 순서는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사랑, 공평, 그리고 구원을 경험하고 난 다윗은 자신이 악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다윗의 경험은 회개 후 구원의 순서를 뒤바꾸어 놓는다. 구원이 먼저고, 회개는 나중이다. 다윗의 선함과 악함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니, 비로소 다윗은 자신의 허물과 악함을 보았다. 감격한 다윗이 찬양을 하니까, 시편에는 한결같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악합니다가 먼저 나온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낄수록, 죄의 인식도 그만큼 증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죄 고백부터 할 수밖에 없다.
선과 악이 다윗 안에 공존한다. 이것은 다윗의 결정적 인식이다. 악인의 마음 깊은 곳(1절)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다윗의 마음 깊은 곳이다. 세상에 자기 밖에 보이는 사람이 없는 사람, 그가 바로 다윗이다. 다윗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의 날개 아래에서 다윗을 보호하셨다.
다윗의 눈에 성서, 곧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우선적인 보호하심들을 담고 있다. 그러니 다윗이 주님의 말씀은 꿀송이보다 달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성서의 말씀을 꿀송이보다 달다고 느낄까? 착한 사람인가 죄 많은 사람인가?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선제적으로 용서함을 받은 그에게 성서는 꿀보다 달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로부터 마침내 죄인 중의 괴수로 규정하는 그에게 성서는 보다 강한 단맛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