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0 : 다윗의 칼

7절: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9절: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7절: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9절: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과 칼싸움을 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합을 겨룰 수 없다. 그래도 다윗은 사람이니까 하나님께 칼을 휘두른다. 하나님이 다윗의 칼을 받아만 주어도 그의 칼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칼을 잃은 다윗이 하나님의 칼을 무엇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

하나님의 칼이 멈칫하는 사이 다윗에게 밤이 찾아 왔다. 해 지고 해 뜨기 전까지의 밤이라면 가늠이라도 하겠지만 새벽이 없는 밤이다. 다윗이 마지막으로 입을 뗀다.

“내가 죽어 한 줌의 티끌이 되는 것이 당신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나는 시편 28편부터 읽어 오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위계, 하나님의 실재, 그리고 인간 사유의 프로젝션을 생각했다. 인간 사유 속의 하나님인가, 그것 밖의 하나님인가만 남는다. 파스칼이 한 말이 생각났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면, 최선의 선택을 하라. 기왕이면 있다를 선택하라.’ 하나님 실재에 판돈을 걸고 판돈을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 사유 밖에 실재한다면 얼마나 큰 낭패인가. 사람은 어떤 선택이 더 처참하고 지옥 같을까 정도는 충분히 머리를 굴릴 수 있다.

다윗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하나님에게 무엇이 유익인가? 하나님이 다윗을 죽여서 무슨 낙을 볼 것인가?

옛말에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펜이 칼보다 무섭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온 마음과 뜻과 영혼을 다해 보이지 않는 칼로 하나님을 내리쳤다.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선택을 내보였다.

시편 30편은 성전 봉헌가이다. 성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성전은 다윗 같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칼로 하나님을 향해 휘두르는 곳이다. 그런데 요즘 성전이라고 하는 곳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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