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 : 존재 자체로부터

14절: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

제대하고 복학하니 우리 과에 젊은 비구니 스님 한 분이 공부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적은 없지만, 어느 철학 강의 시간에 그분이 발표하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구니 스님이 자궁을 언급하며 임신 이야기로 개똥철학을 펼쳐서다. 스님은 둥그렇게 원을 하나 그리더니 이게 자궁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임신한 아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 했다. 비구니가 자궁이며 임신을 입에 올리는데 강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 말이 당시 내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지만 마음 한 켠에 남았다.

나 어릴 때는 글자를 알고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는 아예 없었다. 16절 갱지에 검은 커버를 덧대어 검정 노끈으로 묶은 걸 공책 삼아 거기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ㄱㄴㄷㄹ, ㅏㅑㅓㅕ를 따라 쓰고, 10번씩 쓰기 숙제를 하면서 공부라는 게 시작 됐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떼고 들어간다고 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시편 27편의 다윗은 8살이다.

다윗이 1절에서 하나님 외에 누구를 두려워 하겠느냐고 적고 있지만, 그는 다른 두려운 존재들을 안다. 다윗이 4살이라면 혹은 그 이전의 자궁 속 태아라면, 두려운 존재를 몰랐을 거다. 4살은 글을 모르지만 8살은 안다. 4살은 시편 27편을 읽고 쓰지도 못하지만 8살은 안다. 4살은 제 부모가 최고인 줄 알지만 8살은 부모가 최고가 아님을 안다. 자궁 속 태아와 4살은 탈존재의 위기를 모르지만 8살은 자신이 존재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시편 27편은 8살 다윗이 탈실존하려는 몸부림이다. 27편은 자궁 속 태아의 상태로, 최소한 4살로 돌아 가고픈 다윗의 기도다.

사람들은 8살이 겪는 위기를 극복하려고 존재에로 돌아가자며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가 실존의 DNA로부터 솟아난다고 하면서 사람 본성으로 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이 구호를 한창 외치다가 어느 결에 ‘존재에로’가 아니라 ‘존재로부터’라고 했다. 사람의 회귀 본능을 그대로 살려서 존재를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고 했다.

다윗은 14절을 존재에로의 용기가 아니라 존재로부터 들려오는 그 무엇이라고 방향을 전환한다. 8살 다윗은 제 힘으로써 4살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8살 다윗이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기다리면 실패한다. 하나님이 8살 다윗에게 강하고 담대하게 오셔야 한다. 이것은 8살 다윗이 4살 다윗이 되는, 그러니까 비구니 스님이 설파 했던 자궁 속 태아가 되는 기적이다. 시편 27편은 8살이 되어버린 헛헛한 다윗의 하나님의 다가오심에 대한 희망이다. 시편 27편은 기적을 갈망하는 8살 다윗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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