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 팽이가 서 있으려면
3절: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이 마당에, 의롭다는 게 무슨 소용이냐?
다윗은 의로움을 편드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의로움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무너져내리는데, 너의 판단과 결정이 무슨 소용이냐며 다윗을 공격했다.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존재 문제가 발생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선에 거주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윗의 하나님은 선악 너머에 계신다. 그가 말한 하나님이 계신 곳을 수직의 공간으로 표현하면, 하늘의 하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산으로 피하라는 말은 다윗을 설득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산 너머 산에 계시기 때문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시간적으로는 태초와 종말 너머, 곧 영원에 계신다.
비록 태초와 종말의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이라 할지라도, 악은 태연히 자기 길을 서슴치 않고 걷는데, 선은 발걸음마다 자기를 증명하며 걸어야 한다. 그렇게 선한 길은 그 길을 걷는 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불편하고, 그들을 옥죄기에 좁은 길이다. 의로움의 편에 선 사람에게는 지속 가능성이 요구된다. 팽이가 넘어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으려면, 팽이채로 계속 자기 몸을 내려쳐야 한다. 더는 서 있지 못할 지경에 이른 팽이가 마침내 구원의 문에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