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들의 땅에 박힌 돌과 언약의 기억 (레위기 26장)
레위기 26장은 순종에 따르는 축복의 짧은 약속(3-13절)을 지나, 청종하지 않는 백성을 향해 거듭 증폭되는 칠 배의 징벌(14-39절)이라는 서늘한 벼랑으로 치닫는다. 하늘은 철처럼 닫히고 땅은 놋처럼 굳어지며,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빵 부스러기를 저울에 달아 나누는 끔찍한 기근을 거쳐, 마침내 자녀의 살을 삼키고 마른 잎사귀 소리에도 쫓겨 넘어지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성경 전체에서 오직 레위기 26장에서만 일곱 번 반복되는 대항(קֶרִי, 케리)이라는 낱말처럼 하나님께 맞서 걸어간 인간의 길은 온 국토의 사막화와 원수의 땅으로 흩어지는 참혹한 유배로 마침표를 찍는다. 시내 산에서 엄숙하게 맺었던 쌍방적 계약은 인간의 완고한 거역 앞에서 남김없이 산산조각 난다.
이 잿더미 한복판에서 우리는 흔히 44절과 45절의 약속을 서둘러 집어 든다. 원수의 땅에 끌려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아주 멸하거나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신다는 선언은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굳건히 박혀 있는 단단한 주춧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은 그 돌 위에 안도하기 전에 먼저 뼈아픈 침묵의 자리를 요구한다.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기 직전 선포되는 것은 징벌의 조기 종결이나 사면이 아니라, 할례받지 않은 마음이 낮아져서 형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41절)는 냉혹한 현실이다. 고통을 면제받고 싶은 인간은 인생사 전체를 어쩔 수 없는 형벌이자 희로애락의 범주로 뭉뚱그리며 슬그머니 관조자의 의자로 물러앉으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은 그렇게 흐려지지 않는다.
형벌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자리는 고통스럽다. 심지어 원수의 땅에서 터져 나오는 자신의 탄식조차 자아가 부서진 가난한 비명인지, 아니면 파국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종교인의 익숙한 안전장치인지 스스로 분간할 수 없다. 제 회개의 순도조차 입증할 수 없는 무력함 한가운데서 인간은 비로소 모든 기댈 언덕을 상실한다. 바로 그 밑바닥에서 하나님이 꺼내 드시는 것은 시내 산의 파탄 난 계명 대신 그보다 훨씬 앞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42절)이다. 인간이 신실함을 지켜내지 못해 시내 산의 계약이 무너졌을 때,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묻지 않는 조상들과의 일방적 약속을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신다.
하나님이 원수의 땅에 있는 백성을 물리치지도, 지겨워하지도 않겠다고 하신 까닭은 인간의 참회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고"(45절)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는 하나님의 자기 정체성, 곧 "나는 여호와다"라는 그분의 지독한 신실하심이 심판의 칼날을 멈추어 세운다. 그러므로 원수의 땅에 박혀 있는 언약의 돌은 값싼 위로가 아닌 파선한 인간의 발밑을 바치는 서늘하고 엄중한 은혜의 실재이다. 내 참회의 순결함을 믿을 수 없는 곤고한 날에도 우리는 그분의 품을 그리워하며 형벌의 자리를 묵묵히 견뎌낸다.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고 고요히 머리를 숙일 때, 하나님이 스스로 묶이신 그 언약의 무게가 우리를 조용히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