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없는 제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맹세 (레위기 22장)

핵심 요약: 레위기 22장은 제단의 장엄한 연기 뒤편, 흙먼지 날리는 외양간과 털 깎는 우리의 비린내 나는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제사장은 가축의 눈을 뒤집어보고 다리의 관절을 어루만지며 가죽 아래 숨겨진 혹이나 짓무른 상처를 살핀다.

레위기 22장은 제단의 장엄한 연기 뒤편, 흙먼지 날리는 외양간과 털 깎는 우리의 비린내 나는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제사장은 가축의 눈을 뒤집어보고 다리의 관절을 어루만지며 가죽 아래 숨겨진 혹이나 짓무른 상처를 살핀다. 눈이 멀었거나 뼈가 부러진 짐승, 옴이 오르거나 생식기가 으깨진 것은 제단에 오를 수 없다(22-24절). 식탁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몸에 부정한 병이 돋거나 주검을 만진 제사장은 거룩한 몫으로 구별된 음식을 먹지 못하며, 밖에서 들어온 나그네나 품꾼에게도 성물은 철저히 가로막힌다. 텍스트는 고결한 내면의 수양이나 신령한 기도가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짐승의 흠결과 밥상머리의 정결이라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투박한 현실의 경계선들을 묵묵히 통과해 나간다.

인간은 거룩이라는 이름을 빌려 교묘한 성벽을 쌓는 데 비상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부모를 봉양하고 이웃의 신음을 돌아보아야 할 책임을 내팽개친 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핑계로 "고르반"(Corban)을 외치던 바리새인들의 위선은 죄에 물든 인간 실존의 오래된 풍경이다. 사람들은 시장에 내다 팔 기름진 것은 제 몫으로 챙겨두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저는 것과 병든 찌꺼기를 제단에 밀어 넣으며 뻔뻔한 제사를 이어갔다. 레위기 편집자는 이러한 인간의 둔감함 한가운데에 기이한 규례 하나를 던져놓는다. "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라"(28절). 탐욕에 눈이 멀어 피조물의 숨결을 거칠게 다루는 도살장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짐승의 모자 관계에 깃든 생명의 연약함을 향해 서늘한 긍휼의 제동을 거신다.

하나님이 음식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이 굶주리셨기 때문이 아니다. 이집트의 진흙탕 노예 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여호와는(33절), 당신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거룩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우리의 부엌과 가축 우리 깊숙한 곳까지 당신의 이름을 끌고 들어오신다. 거룩은 세상을 초탈한 저 높은 하늘의 진공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흠 있는 짐승을 가려내고 작은 곤충의 부정을 씻어내는 구체적인 일상의 지층에서 입증되어야 할 생명의 무게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거친 울음소리와 일상의 작은 선택들 하나하나에 당신의 명예를 걸어두셨다.

그러나 "사람이 진실로 거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무너져 내린다. 제아무리 순수한 애정을 쏟아붓고 모든 정성을 다한다 해도, 인간 실존의 심연에 똬리 튼 부패와 계산을 온전히 걷어낼 길은 없다. 흠 없는 온전함을 요구하는 율법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결코 흠을 벗어날 수 없는 부정한 존재임을 자각하며 절망한다. 만일 텍스트가 인간의 힘으로 거룩을 이루어내라고 다그치는 것으로 끝났다면, 레위기는 피조물을 질식시키는 잔혹한 폭력의 목록에 불과했을 것이다.

바로 그 절망의 벼랑 끝에서 레위기 22장은 복음의 심장을 드러낸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다"(32절). 이 선언은 무능한 인간을 향한 가혹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을 향해 밀어붙이시겠다는 거룩한 언약의 맹세이다. 이룰 수 없는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 스스로가 그 거룩의 대가를 짊어지시겠다는 거룩한 자기 헌신이다. 그 약속은 훗날 골고다 언덕에서 참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마침내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흠 있는 우리를 제단 밖으로 내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당신의 흠 없는 몸을 찢긴 떡으로 내어놓으심으로써 우리를 거룩의 자리로 품어 안으셨다. 레위기 22장의 규례들은 마침내 우리를 정죄하는 칼날이 아니라, 우리의 누추한 외양간까지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빚어내시는 압도적인 은혜의 초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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