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식을 바치는 사람 (레위기 21장)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의 몸과 걸음에 둘러쳐진 엄격한 경계선들을 묘사한다. 대제사장은 부모가 숨을 거두어도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며 애도할 수 없다(10-11절). 백성 중 죽은 자를 만져 자신을 더럽혀서도 안 되며, 슬픔의 눈물을 삼킨 채 성소의 문간에 머물러야 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자연스럽고 본원적인 혈연의 비통함마저 가로막힌 채 하나님의 성소를 지켜야 하는 자리이다. 제사장은 가장 깊은 인간적 슬픔의 순간에도 죽음의 그늘에 닿지 않아야 하는 서늘한 침묵을 요구받는다.
육체적 흠결을 다루는 후반부의 규례는 한층 더 당혹스럽다(16-23절). 아론의 자손 중 눈이 멀었거나 다리를 절거나 코가 불완전한 형제는 하나님의 떡을 바치기 위해 제단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은 제사장의 가족으로서 성물을 함께 나누어 먹을 권리는 보장받지만, 휘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제단 가까이에 서는 일은 엄격히 차단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냉혹한 배제와 차별의 질서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 차단의 배후에는 타락 이후 만연해진 결손과 죽음의 기운이 하나님의 성소를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치열한 방파제가 서 있다. 제사장의 차단은 인간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신적 폭력이 아니라 죽음의 침투에 맞서 생명의 근원을 온전하게 지켜내려는 역설적인 생명 수호이다.
레위기 편집자는 이 엄혹한 성결 규례의 심장을 8절에서 한 문장으로 드러낸다. "너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대해야 한다. 그는 너의 하나님께 음식을 바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굶주려 음식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니다. 제사장은 땅의 흙에서 땀 흘려 거둔 곡식과 기름, 곧 피조세계의 결실인 "음식"(레헴)을 모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상향적 봉헌의 대표자이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생명과 거룩이 사람과 사물 속으로 거침없이 흘러가도록 통로를 열어두는 하향적 수로의 정점에 서 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잇는 거대한 관계망의 십자로에서 인간 실존 전체를 대리하는 존재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 사이의 소통이 막힘없이 순환하는 창조의 원형을 가리켜 "토브"(좋다)라고 불렀다. 레위기 21장의 제사장이 지키려 했던 거룩은 죽음과 왜곡으로 얼룩진 세상 한복판에서 그 원초적 소통의 통로를 막아서는 오염을 차단하는 파수꾼의 직무였다. 레위기의 제사장이 결손을 경계선 밖에 둠으로써 성소의 온전함을 지켰다면, 훗날 참 대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그 거룩의 방향을 완성하셨다. 그리스도는 흠 있는 자들을 제단 밖으로 밀어내는 대신 그들의 연약한 몸을 친히 만지셨고,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찢긴 떡이 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을 잇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셨다.
레위기 21장의 율법을 통과하며 마주하게 되는 것은, 거룩이란 결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람과 피조세계로 막힘없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 제사장이 자기 몸을 방패 삼아 지켜낸 거룩한 수로였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음식을 바치며 죽음의 질서를 거절하고 생명의 소통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자리였다. 레위기 편집자는 제사장의 이 엄혹한 규례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생명을 잇는 인간 실존의 무게를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