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견디지 못하는 것 (레위기 20장)

핵심 요약: 레위기 20장은 돌로 치고 불로 태우는 장이다. 현대의 독자는 이 살벌한 형벌 목록 앞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도대체 이 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런데 레위기 편집자는 사형 세칙을 나열한 뒤, 장의 끝에서 이 모든 규정의 근거를 두 문장으로 압축한다.

레위기 20장은 돌로 치고 불로 태우는 장이다. 현대의 독자는 이 살벌한 형벌 목록 앞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도대체 이 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런데 레위기 편집자는 사형 세칙을 나열한 뒤, 장의 끝에서 이 모든 규정의 근거를 두 문장으로 압축한다. "내가 데려다주어 너희가 살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게 해야 한다"(22절). "너희는 내게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26절). 사형이라는 극단적 형벌의 배후에 편집자가 수호하려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 땅의 연결이다. 레위기 20장은 이 셋의 관계를 하나의 끈으로 엮어 놓는다. 26절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고, 22절에서 사람은 땅 위에 살도록 허락받았다. 거룩한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그 사람이 딛고 서는 땅. 이 세 항이 올바르게 연결된 상태를 성경은 "토브"(좋다)라고 부른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보시고 "좋다"고 선언하신 그 질서가 레위기 20장의 뒤편에도 살아 있다. 거룩(카도쉬)은 이 토브를 지키기 위한 구별이다. 토브를 파괴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놓으라는 요청이다.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행위(2절)가 왜 돌로 쳐 죽일 만큼 극단적인 죄로 지목되는가는 이 연결 안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몰렉에게 넘기는 것은 단순한 우상숭배가 아니다. 여호와가 맺어준 관계의 방향을 통째로 비틀어 버리는 행위이다. 관계가 향해야 할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관계의 왜곡은 관계의 파괴이다. 신접하는 자를 따르는 것(6절)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접촉하되 여호와를 경유하지 않는 접촉, 그것은 삼중 연결의 한 축을 뽑아 버리는 일이다. 레위기 편집자가 이토록 엄중한 형벌을 부과한 것은 한 사람의 이탈이 세 항의 연결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레위기 20장에서 가장 기이한 문장은 아마 22절일 것이다.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게 해야 한다." 히브리어 동사 카아(קיא)는 구토를 뜻한다. 땅이 사람을 토해 낸다. 이 격렬한 신체적 은유가 말하는 것은 땅이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토브의 질서가 무너지면, 땅은 그 위에 사는 자들을 더 이상 품지 못한다. 땅의 구토는 악의 법칙이 아니라, 토브의 법칙이 관철되는 방식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그 거룩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이 그 부름을 저버릴 때, 땅조차 그를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과 사람과 땅은 그만큼 깊이 엮여 있다.

레위기 20장의 형벌 목록을 읽으며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창조 때 선언하신 "좋다"가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는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다. 토브는 감상이 아니라 질서이고, 그 질서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엄중한 것이었다. 거룩하라는 명령은 그 질서 안에 머물라는 초대이다. 분리하라는 것은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연결된 상태를 수호하라는 것이다. 사형 세칙의 살벌함 뒤에서 레위기 편집자가 떨리는 손으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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