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모퉁이에 저당 잡히신 하나님의 거룩 (레위기 19장)
레위기 19장은 제단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와 뙤약볕이 내리쬐는 추수 밭과 시끌벅적한 장터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의 서걱거리는 소리, 날이 저물도록 일하고 빈손으로 서 있는 일용직 노동자의 거친 숨결, 시장 골목에서 곡식 되를 흔들며 조금이라도 덜 담으려는 장사꾼의 메마른 눈빛이 텍스트의 구체적인 무대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며 거룩의 자리를 하늘 높은 곳이나 성소의 신비로운 휘장 뒤에 감추어두지 않으십니다. 낫을 든 농부의 발치에 스치는 밭모퉁이의 이삭과 귀먹은 자의 뒤통수, 앞 못 보는 사람 앞의 돌부리라는 지극히 누추하고 비열한 일상의 바닥에 당신의 거룩을 던져놓으십니다. 구체적인 생활의 조목들이 이어질 때마다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나는 여호와다"라는 서명을 통해 우리는 거룩함이란 관념적 감상이 아니라 매일 딛고 살아가는 흙먼지 묻은 바닥에서 검증받아야 할 실존의 무게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지혜는 언제나 율법의 틈새를 파고들어 제 잇속을 채우는 데 비상한 재주를 부립니다. 규칙이 촘촘해질수록 인간은 조문의 글자만 지켜내며 안도하고, 마침내 부모를 봉양할 몫마저 하나님께 드렸다며 고르반을 외쳐버리는 끔찍한 잔머리를 발휘합니다. 십일조의 박하와 회향은 저울로 달아 바치면서도 정작 그 규례가 품고 있던 공의와 자비라는 알맹이는 가차 없이 도려내는 것이 죄에 물든 인간의 실존입니다. 밭모퉁이의 곡식 한 톨까지 빗자루로 쓸어 담아 제 곳간을 채우고, 가난한 품꾼의 하루 일당을 해 질 때까지 주머니에 쥐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흠 없는 종교인이라 착각합니다. 약자의 눈물과 억울한 신음을 딛고 서서 제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인간의 비열한 탐욕은 공동체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으며 피조 세계를 질식시키는 탄식을 자아냅니다.
인간의 부정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레위기의 파격적인 묘사는 역설적으로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얼마나 깊이 매여 계시는가를 웅변합니다. 자식이 가슴을 후벼파도 그 혈육의 끈을 결코 끊어내지 못하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죄 많고 연약한 인간과의 관계에 당신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송두리째 저당 잡히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분이 스스로 무력해지기를 자처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작고 힘없는 이들의 등 뒤에 당신의 명예를 걸어두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중심에 박힌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명령은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과 직결된 생명의 선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벌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내가 보고 있다, 나는 여호와다"라며 그 무력한 자의 보호자로 마주 서십니다.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은 동포라는 울타리를 걷어차고 마침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방 나그네를 향해 거침없이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함께 살아가는 거류민을 제 몸에서 낳은 자식처럼 품으라고 몰아붙이시며, 그 근거로 백성들의 부끄러운 기억을 단번에 소환하십니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느니라." 이 한마디는 자신이 본래 진흙탕에서 채찍 맞던 비참한 노예였음을 일깨우며,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기득권과 자기방어의 계산기를 단숨에 박살 냅니다. 내가 하나님께 생명을 빚진 나그네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인간은 타자를 향해 움켜쥐었던 손을 펴게 됩니다. 물론 이 공식이 실패할 때가 더 잦습니다. 스스로 나그네가 되어 인간에게 빚진 자의 자리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사랑은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그 절정에 도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나그네의 모습으로 벌거벗겨진 채 인간의 온갖 착취와 잔인한 죄악을 찢긴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셨습니다.
레위기 19장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룩은 화려한 종교적 수사나 황홀한 제의의 도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마주하는 일터에서 공평한 저울추를 올려놓고, 가난한 이웃과 나그네를 위해 내 소유의 밭모퉁이를 정직하게 비워두는 담담한 결단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빚진 자로 서 있을 때, 계명은 나를 옭아매는 무거운 족쇄가 아니라 이웃을 살려내는 따뜻한 생명의 통로로 탈바꿈합니다. 내 삶의 가장 사소하고 구체적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심장을 저당 잡힌 자답게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텍스트가 가리키는 거룩의 온전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