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하체와 인간의 품격 (레위기 18장)
나일강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기름진 삼각주를 등진 채, 척박한 광야를 가로질러 가나안의 골짜기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거친 행렬이 펼쳐집니다. 텐트 사이로 스며드는 모래바람 속에서 텍스트는 출발지 이집트의 거대한 제국 문명과 도착지 가나안의 낯선 땅을 동시에 응시하게 만듭니다. 그 화려한 제국의 건축과 풍요로운 신전들의 배후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침상을 지배하던 은밀하고도 잔인한 질서가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흙먼지 날리는 광야의 한복판에서 백성들의 옷깃을 헤치듯, 살과 살이 맞닿는 가장 깊숙하고 낯뜨거운 자리인 족보와 침상의 치부, 곧 하체의 목록을 하나하나 호명하십니다. 성경은 인간 실존의 거룩함이 제단의 거룩한 향연이나 낭만적인 종교적 감상이 아니라 감추어진 육체의 부끄러움과 혈연의 경계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자리에서 비로소 시험받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드러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의 터전은 의식주에 머물지 않고 살과 피를 지닌 몸의 성(性)적 실존으로 확장됩니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은 쾌락을 숭배하고 풍요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혈연의 엄중한 경계를 허물고, 마침내 제 피붙이인 어린 자식까지 불길 속에 내던져 몰렉의 신전 바닥을 피로 물들입니다. 풍요라는 우상을 달래기 위해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 지녀야 할 고결한 품격을 내팽개치는 끔찍한 파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그 비틀린 욕망은 방구석의 은밀한 죄악에 머물지 않고 대지 전체를 질식시키는 치명적인 오염으로 번져나갑니다. 레위기는 인간의 음란과 탐욕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살아 숨 쉬는 땅마저 고통에 신음하며 마침내 그 거민을 스스로 토해내고 만다는 우주적 탄식과 파국을 경고합니다.
태초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범한 아담이 하나님의 발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자신의 벗은 하체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고 나무 뒤로 숨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현란한 성풍속과 가나안의 제의적 방종은 실상 죄로 인해 영혼과 육체가 온통 발가벗겨진 인간이 제 실존의 수치와 죽음의 공포를 달래보려 엮어 만든 거대하고 추악한 무화과나무 잎사귀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낯부끄러운 하체의 금기들을 집요하게 들이미신 것은 인간을 옭아매는 잔인한 율법주의의 덫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제 손으로 엮어 만든 거짓 잎사귀를 찢어버리시고 인간의 품격을 당신 자신의 거룩한 인격과 하나로 연동시키는 창조주의 구속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끄러움을 덮어주기 위해 친히 짐승을 잡아 피 묻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그 태초의 자비로써 인간 실존의 가장 내밀한 자리에 당신의 이름을 걸어두셨습니다.
하체를 가려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애타는 집념은 마침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그 절정에 도달합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조롱 속에서 입고 계시던 겉옷과 속옷마저 남김없이 벗겨진 채 가장 수치스럽고 처절하게 발가벗겨진 몸으로 나무에 매달리셨습니다. 인간이 침상과 우상 앞에서 저지른 모든 더러운 탐욕과 벌거벗은 하체의 죄악을 하나님의 아들은 찢긴 육체로 고스란히 뒤집어쓰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인간이 불안을 달래기 위해 엮어 입던 누추한 무화과 잎사귀를 완전히 태워버렸으며, 흠 없는 의의 세마포로 죄인의 수치를 영원히 덮어주셨습니다. 인간의 품격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벌거벗김의 수치를 감당하신 이 압도적인 역설 앞에서 사망과 정죄의 권세는 영원히 무너져 내립니다.
레위기 18장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단순히 율법의 조목들 몇 가지를 지켜냈느냐는 얄팍한 바리새적 계산이 아닙니다. 텍스트는 오늘 우리의 심장을 향해 묻습니다. "너의 가장 내밀하고 끈적한 부끄러움이 지금 누구의 면전(Coram Deo)에 서 있는가?" 화려한 이집트의 관성과 풍요를 약속하는 가나안의 유혹 속에서 우리는 내 부끄러운 실존을 거짓된 종교의 무화과 잎 뒤로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발가벗겨 내어놓는 거룩한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 아래 내 모든 욕망과 연약함을 정직하게 노출할 때, 비로소 인간은 육체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참된 품격을 되찾고 대지마저 숨을 쉬는 생명의 길로 걸어 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