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질그릇과 거룩의 경계 (레위기 15장)
레위기 15장은 광야 진영의 가장 내밀하고 은밀한 장막 안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제사장이 마주하는 자리는 거룩한 분향단으로부터 밤새 몸에서 흘러내린 분비물로 젖어 있는 한 사람의 침상과 옷가지로 옮겨갑니다. 인간의 몸은 연약하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액을 밖으로 쏟아냅니다. 살갗을 타고 흐르는 피와 유출물은 사람이 눕는 침상과 앉았던 의자, 손이 닿는 그릇마다 번져나갑니다. 레위기는 이 지극히 사소하고 감추고 싶은 신체의 분비물을 향해 엄중하게 부정하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하루아침에 부정한 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몸을 물로 씻고 옷을 빨며 저녁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이란 제 몸의 작은 액체 하나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한 진영 안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위태로운 질그릇입니다.
성경이 규정하는 부정은 윤리적 악행이나 도덕적 타락의 꼬리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인 죽음이 맞부딪치는 존재론적 경계선에서 피어오르는 서늘한 신호입니다. 피는 생명 그 자체이며 정액은 새로운 숨결을 이어가는 씨앗이지만, 그것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생명의 온전한 질서는 허물어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고 사랑을 나누는 지극히 숭고한 결합의 자리에서조차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창조의 생명과 언제든 썩어 흙으로 돌아갈 먼지의 비극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에 얽혀 있습니다. 희비를 동시에 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몸은 자신이 결코 생명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상의 유출을 통해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한 사람의 부정이 장막을 넘어 진영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레위기는 부정한 사람의 손이 닿은 흙으로 빚은 질그릇은 가차 없이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흐르는 물에 씻어내라고 경고합니다. 진영 한가운데 세워진 하나님의 성막은 죽음의 오염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거룩의 처소였기에 개인의 부정을 방치하는 것은 곧 거룩하신 분을 진영 밖으로 밀어내 온 백성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비극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화려한 전례복 대신 흙먼지 묻은 손으로 백성의 침상과 그릇을 살피고, 비둘기 두 마리의 목을 비틀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거룩과 부정의 경계선을 지켜냈습니다. 남의 부끄러운 분비물과 핏자국을 온종일 대면해야 했던 제사장의 고된 노동 속에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백성 가운데 끝까지 머무시기 위해 마련하신 눈물겨운 은혜의 방파제를 엿보게 됩니다.
아론의 제사장들이 부정을 차단하기 위해 세밀한 선을 긋고 격리할 때, 나사렛 예수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 피를 흘리며 격리되었던 여인이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분은 부정해지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룩의 생명력으로 여인의 마른 샘을 채우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오염을 피해 한 걸음 물러섰다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오염의 한복판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온 인류의 냄새나는 피와 부정을 홀로 짊어지신 채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가장 부정한 자들이 버려지는 성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깨어진 질그릇처럼 온몸의 물과 피를 쏟아내신 그 십자가는 부정을 밀어내는 율법의 경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죽음의 쓰레기장을 영원한 생명의 샘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너희가 깨끗하지 않은 가운데서 죽지 않도록 하라"는 레위기의 서늘한 경고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깨끗하신 분이 대신 죽으심으로 거룩한 평강으로 변모했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생과 사의 경계선 위에서 울고 웃으며 연약한 몸을 이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천한 살갗과 부끄러운 유출조차 더는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지 못합니다. 가장 낮고 부정한 자리까지 내려와 손을 내미신 대제사장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피 묻은 사랑을 응시할 때, 우리의 감사는 안이한 종교적 습관을 벗어나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자의 깊은 경외와 찬송으로 울려 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