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피에 빚진 사람의 정결 (레위기 14장)

핵심 요약: 레위기 14장은 황량한 들판과 진영 밖 메마른 흙바닥에서 시작됩니다. 어제까지 옷을 찢고 윗입술을 가린 채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세상의 경계선 너머로 쫓겨났던 나병환자가 마침내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고 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여...

레위기 14장은 황량한 들판과 진영 밖 메마른 흙바닥에서 시작됩니다. 어제까지 옷을 찢고 윗입술을 가린 채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세상의 경계선 너머로 쫓겨났던 나병환자가 마침내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고 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부정한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 거룩한 하나님과 이웃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메마른 경계선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낯선 제의를 치러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걸어 나와 그를 위해 준비하게 한 것은 두 마리의 살아 있는 정결한 새와 붉은 삼나무 토막, 진홍색 실, 그리고 돌담 틈새에서 자라는 보잘것없는 우슬초였습니다. 인간의 깨어진 살갗 하나를 씻어내기 위해 하늘을 날던 새와 대지의 식물들이 피비린내 나는 제단으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삶과 불행이 오직 자신만의 닫힌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제의는 인간의 실존이 온 피조 세계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얽혀 있음을 서늘하게 폭로합니다. 피부병을 앓고 싶어서 앓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도덕적 악행의 결과가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피조 세계의 덧없음과 질병의 고통이 한 사람의 살갗 위에 들이닥친 비극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다시 깨끗함을 얻고 공동체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새의 목이 베여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제 뜻이 아니라 허무한 데 굴복하며 이제까지 다 함께 탄식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절규했던 우주적 탄식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부정은 언제나 무고한 피조물의 신음과 피를 대가로 요구합니다. 창조의 질서가 어그러진 세상에서 생명의 회복이란 결코 값없이 주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제사장은 흐르는 물, 곧 생수(living water)를 담은 질그릇 위에서 새 한 마리를 잡습니다. 흙으로 빚어 쉽게 깨어지고 금이 가는 질그릇 안에 맑은 샘물과 붉은 핏방울이 뒤섞입니다.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를 붉은 실로 묶어 살아 있는 다른 새와 함께 그 피 묻은 물에 푹 담급니다. 솔로몬의 영화를 상징하는 가장 높고 썩지 않는 삼나무와 돌담 밑에 납작 엎드린 가장 낮고 천한 우슬초가 붉은 생명의 줄에 묶여 같은 피를 뒤집어씁니다. 하늘의 가장 높은 곳부터 땅의 가장 비천한 밑바닥까지 창조 세계의 모든 높낮이가 하나의 제단 위에서 붉은 대속의 피로 포개어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훗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깨어지기 쉬운 인간의 연약한 질그릇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웅장한 왕의 위엄과 가장 비천한 종의 낮아짐을 한 몸에 품고 십자가의 피를 흘리실 거룩한 성육신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14장의 절정은 바로 그 질그릇을 벗어나 광야의 허공으로 터져 나옵니다. 제사장은 죽은 동무의 피에 흠뻑 젖은 그 살아 있는 새를 들판을 향해 놓아줍니다. 새는 동무의 피비린내를 깃털에 묻힌 채 창공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그 날갯짓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던 병자의 가슴속에는 어떤 바람이 휘몰아쳤을까요.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에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깊은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한쪽 면에는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형벌의 잔인함과 대속의 처절한 신음이 새겨져 있지만, 다른 한쪽 면에는 그 죽음의 골짜기를 뚫고 솟아오르는 찬란한 생명과 용서의 기운이 약동합니다.

사람과 개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웁니다. 감정이 한계에 다다르면 슬픔과 기쁨은 한 줄기 눈물로 뒤엉켜 흘러내립니다. 진영 밖 들판에 서 있던 그 사람도 그렇게 울었을 것입니다. 나 때문에 목이 잘려 차가운 질그릇에 가라앉은 새를 바라보며 목이 메는 슬픔과 미안함의 눈물을 쏟았을 것이고, 동시에 자기의 온갖 부정과 죽음의 낙인을 날개에 묻힌 채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슬픔의 통곡과 기쁨의 찬송이 한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은혜의 역설, 그것이 바로 들판에서 거행된 정결의 신비였습니다. 피를 묻힌 채 날아간 그 새는 진영 밖에서 죽어 마땅했던 우리 대신 저주를 짊어지고 날아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다시는 정죄함이 없음을 푸른 하늘에 선포하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일으키는 거룩한 부활의 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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