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밖의 절규와 덮으시는 은혜, 진영의 경계선에서 마주한 칭의의 역설 (레위기 13장)
레위기 13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차갑고 메마른 의학 보고서처럼 읽힙니다. 낭종, 종기, 화상, 옴, 곰팡이. 피부에 돋아난 반점의 색깔과 털의 뿌리, 우묵하게 파인 살점을 냉정하게 응시하는 율법의 문장들은 일체의 감상이나 동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판정은 단호하고 가차 없습니다. "그는 부정하다. 진영 밖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듯 옷을 찢고 머리를 푼 채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세상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는 한 인간의 뒷모습은, 질병이 곧 죄와 징벌의 낙인이 되던 고대의 잔인한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합니다. 도대체 율법은 왜 한 인간의 존엄을 이토록 철저히 부수어 놓았으며, 그 처절한 외침은 누구를 위해 터져 나와야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의 엄혹한 조문 뒤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던 하나님의 지혜와 뜻밖의 온기가 숨 쉬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진영 밖으로의 추방을 광야에 내던져진 고독한 아사(餓死)로 상상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진영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사회를 이루었고, 진영 안의 가족과 이웃들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경계선 너머로 물과 빵을 나르고 옷가지를 건네는 일은 진영 안 사람들의 마땅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정하다!"라는 외침은 존재를 말살하는 저주의 낙인이 아니라, 서로를 파멸시키지 않으면서도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 위한 애달픈 거리두기의 신호였습니다. "내가 여기 살아 숨 쉬고 있으니, 다가오지 말고 그 자리에 양식을 두고 가시오." 그것은 야만의 광야에서 연약한 생명이 돌팔매를 피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가장 처절하고도 자비로운 생존의 암호였습니다.
제사장은 고단한 땀방울을 흘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을 화려한 에봇을 입고 성소의 향연 속에서 축복을 선언하는 특권층으로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3장의 제사장은 우아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피고름과 곰팡이의 악취가 진동하는 임시 막사에서 온종일 사람들의 살점을 들여다보던 감별관이었습니다. 털 하나가 희어졌는지 누렇게 변했는지를 돋보기 보듯 살피고, 의심스러우면 7일을 격리하고, 다시 불러 환부를 확인하고 또 7일을 기다리는 지독한 노동이었습니다. 그의 손끝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공동체와 단절되느냐 복귀하느냐가 걸려 있었고, 그의 눈길 하나에 온 진영의 생사가 좌우되었습니다. 거룩이란 고고한 분리의 자만이 아니라, 가장 불결하고 위험한 경계선에 서서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온몸으로 긴장을 감당하는 고단한 섬김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3장의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모든 상식을 뒤흔드는 기괴한 역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온몸에 피부병이 번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뒤덮이면, 제사장은 그를 향해 도리어 "정하다"라고 선언합니다. 살이 곪고 부분적인 상처가 번질 때는 부정하다고 내쫓더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하나 없이 온통 병으로 덮여버리자 깨끗하다고 판정하는 이 기이한 전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병이 완전히 껍질을 이루어 전염의 위험이 멈춘 상태를 간파한 고대의 통찰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음의 가장 심오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어설프게 자기 의(義)의 건강한 살점을 쥐고 상처를 숨기려 할 때 부정한 죄인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파산자입니다"라고 자신의 전적 부패를 완전히 폭로하고 드러낼 때, 비로소 율법의 고소는 멈추고 하나님의 정하다는 선언이 떨어집니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무지의 자각에서 철학의 문을 열었다면, 복음은 "내가 온통 부정하다"라는 완전한 자기 파산의 고백 위에서 칭의의 문을 엽니다.
하지만 복음의 신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의 눈부신 빛 아래서 마주했던 전율, 곧 그 가슴 저린 통각(統覺)은 인간이 자기의 부정을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이미 은혜가 먼저 당도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치닫던 사울은 자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나병환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레위기의 율법은 부정한 자를 진영 밖으로 내몰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친히 그 진영 밖, 저주와 수치의 영문 밖 골고다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온몸이 썩어 엎드린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이 거룩을 더럽히던 세상의 법칙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거룩이 우리의 모든 부정을 집어삼키고, 진영 밖에서 울부짖던 우리를 영원한 당신의 품으로 안아 들이십니다.